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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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불이 들어온지 꽤 되었어요



                                                                      이월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난 그랬어요
밤새 운전하는 법을 잊었으면 어떻하지
그래도 하루종일 잘만 몰고 다녔죠 (습관은 때로 기억보다 무서워요)
주소 없는 지구의 손금을 생각없이 훑고 다녔죠
숨쉬는 것 만큼이나 쉽게 바람의 심장을 가르며 달렸죠


샤워를 하다가도 한번씩 그랬죠
저 물살이 정지되어 버림 어쩌나
수건으로 닦아낸 비누 끈적이는 몸으로
뭍살이의 기억들을 덕지덕지 온몸에 감고 다녀야겠죠


오일램프에 빨갛게 불이 들어올 때마다 그랬죠
이별선고를 받은 변심치 못한 애인처럼 가슴이 조마조마
남아 있는 몇 마일의 약속을 붙들고도 유유히 차를 몰았죠


주유소는 늘 길 모퉁이에 있잖아요
세월처럼 무심히 꺾어지는 사거리 모퉁이
왼쪽 늑골 아래쯤 작은 기억의 뚜껑을 열고 다시 채우고 싶죠
휘발성 강한 그 몸살의 기억으로라도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길 바라면서도
빗방울이나 눈송이들이 앞유리창에 철퍼덕 쓰러지기도 무섭게
와이퍼를 작동시켜야잖아요
눈물을 닮은 것들은 모두 시야를 가리죠


아라비아 숫자로 기억되는 세월의 마디가 계기판 속에서
물시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똑똑 붉은 혈점으로 떨어지네요
출발지와 목적지는 늘 계기판 바늘이 파르르 떨리며 차오르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곳


빨간 불이 들어온지 꽤 되었어요
모퉁이가 보이네요 (우리가 가는 길들은 모두가 초행길)
주유소가 있겠죠? (여긴 모두 셀프에요)

                                                                 200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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