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21
어제:
219
전체:
5,030,236

이달의 작가
2008.11.21 14:15

매일 떠나는 풍경

조회 수 259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매일 떠나는 풍경



                                                                    이월란



창 밖의 풍경은 매일 떠나고 있다
계절에 충성하며 부르지 않아도 때맞춰
가벼이 날아앉은 것들이 가볍게도 누워 있다
정차한 밤기차처럼 차창 속에 까맣게 앉아있는 나는
음원이 사라진 이명이다


삶의 정본은 나인가, 저 풍경인가, 저 풍경을 건너간 사람들인가
나는 늘 한 폭의 풍경이 끝난 자리에 부록으로 앉아 있다
읽혀도 그만, 읽혀지지 않아도 그만인
참고해도 그만, 참고하지 않아도 그만인, 덤으로 온 별책부록
막이 내리고 난 후의 소음이다


나의 몸 밖에 있는 것들이 내 몸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오는 것이 삶인 줄 알았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 속으로 조금씩 번져들어와
나도 그것들처럼 변색하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의 몸 밖에 있는 것들에게서 제대로 나를 갈라
놓는 법을 익히는 것이 삶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서 물들지 않고도 연애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이었다


눈뜨곤 못 볼 심야의 선정적인 화면처럼
꿈은 늘 장작 없이도 활활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손 내밀어 본 꿈자락에 손끝을 태우고, 가슴 귀퉁이를 태우면서
익명의 존재를 호명하기 위해 매일 시약이 발리지만
산과 알칼리의 중간 쯤에서 펄럭이며,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아직 한 문제도 답을 맞추지 못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휴가 없이 복무하는 세월의 파수병이 되어
갈빗대로 파오를 짓는 밤의 루트마다 상흔같은 별이 뜬다
걸어서 당도하는 폐가 한 채 바람을 견디고 있다
비가 되지도, 눈이 되지도 못한 진눈깨비들이
기억처럼 추적이는 지상의 뒤뜰
이쁜 애완의 짐승처럼 당신 무릎 위에서
낡아빠진 악기가 꿈꾸는 세도막의 녹턴처럼
잠들고 싶은 이 저녁에도

                                                                    2008-11-21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11 부화(孵化) 이월란 2008.10.29 237
910 부음(訃音) 미팅 이월란 2008.05.28 293
909 제1시집 부음(訃音) 이월란 2008.05.09 428
908 부음 1 이월란 2015.09.20 174
907 부산여자 이월란 2008.08.04 266
906 부모 이월란 2010.09.20 546
905 제2시집 부메랑 이월란 2008.07.11 253
904 제1시집 부를 수 없는 이름 이월란 2008.05.08 402
903 제2시집 봄탈 이월란 2008.05.10 276
902 제1시집 봄이 오는 소리 이월란 2008.05.09 336
901 제1시집 봄의 넋 이월란 2008.05.08 389
900 제2시집 봄의 가십 이월란 2008.05.10 250
899 봄비 이월란 2008.05.09 288
898 제2시집 봄밤 이월란 2008.05.10 248
897 봄눈 2 이월란 2010.04.05 430
896 봄눈 1 이월란 2010.04.05 448
895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월란 2010.03.22 466
894 제3시집 이월란 2010.02.21 391
893 볼링장 이월란 2012.01.17 294
892 복사본 이월란 2009.10.21 286
Board Pagination Prev 1 ...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