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1 14:15

매일 떠나는 풍경

조회 수 411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매일 떠나는 풍경



                                                                    이월란



창 밖의 풍경은 매일 떠나고 있다
계절에 충성하며 부르지 않아도 때맞춰
가벼이 날아앉은 것들이 가볍게도 누워 있다
정차한 밤기차처럼 차창 속에 까맣게 앉아있는 나는
음원이 사라진 이명이다


삶의 정본은 나인가, 저 풍경인가, 저 풍경을 건너간 사람들인가
나는 늘 한 폭의 풍경이 끝난 자리에 부록으로 앉아 있다
읽혀도 그만, 읽혀지지 않아도 그만인
참고해도 그만, 참고하지 않아도 그만인, 덤으로 온 별책부록
막이 내리고 난 후의 소음이다


나의 몸 밖에 있는 것들이 내 몸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오는 것이 삶인 줄 알았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 속으로 조금씩 번져들어와
나도 그것들처럼 변색하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의 몸 밖에 있는 것들에게서 제대로 나를 갈라
놓는 법을 익히는 것이 삶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서 물들지 않고도 연애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이었다


눈뜨곤 못 볼 심야의 선정적인 화면처럼
꿈은 늘 장작 없이도 활활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손 내밀어 본 꿈자락에 손끝을 태우고, 가슴 귀퉁이를 태우면서
익명의 존재를 호명하기 위해 매일 시약이 발리지만
산과 알칼리의 중간 쯤에서 펄럭이며,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아직 한 문제도 답을 맞추지 못한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휴가 없이 복무하는 세월의 파수병이 되어
갈빗대로 파오를 짓는 밤의 루트마다 상흔같은 별이 뜬다
걸어서 당도하는 폐가 한 채 바람을 견디고 있다
비가 되지도, 눈이 되지도 못한 진눈깨비들이
기억처럼 추적이는 지상의 뒤뜰
이쁜 애완의 짐승처럼 당신 무릎 위에서
낡아빠진 악기가 꿈꾸는 세도막의 녹턴처럼
잠들고 싶은 이 저녁에도

                                                                    2008-11-21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7 첫눈 2 이월란 2008.11.17 411
1136 횡설수설 악플러-----영혼말이 이월란 2008.11.18 468
1135 새떼 이월란 2008.11.19 418
1134 그리움 이월란 2008.11.19 420
1133 제3시집 유고시집 이월란 2008.11.20 803
» 매일 떠나는 풍경 이월란 2008.11.21 411
1131 낙엽 이월란 2008.11.23 435
1130 무거운 숟가락 이월란 2008.11.23 454
1129 詩3 이월란 2008.11.25 404
1128 詩4 이월란 2008.11.25 417
1127 찬밥 이월란 2008.11.26 473
1126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이월란 2008.11.26 526
1125 빨간 구두* 1 이월란 2008.11.30 481
1124 빨간 구두* 2 이월란 2008.11.30 425
1123 그녀에게* 이월란 2008.11.30 428
1122 빨래를 개면서 이월란 2008.12.02 432
1121 지우개밥 이월란 2008.12.02 405
1120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이월란 2008.12.04 450
1119 밤눈 이월란 2008.12.04 423
1118 흐르는 뼈 이월란 2008.12.09 539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