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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이월란




어둠의 백지 위에 열 수지(手指)빛으로 진하게, 경망히 솟은 구릉마다 밑줄 없이, 조악히 패인 골마다 신중히, 약간 기울어진 흘림체로 당신은 늘 내 몸에 詩를 쓴다. 저장되지 못하는 파지같은 내 몸에 詩를 쓴다. 가끔 파일에 써 놓은 나의 詩가 번역되기도 한다. 수면(睡眠)으로 이어진 아득한 길 따라 용서 못할 것이 없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을, 순간의 절박함이 차렵이불 끝자락을 붙들고 숨이 끊어진다. 각진 삶의 모서리마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는데, 세상이 듣기 전에 서로의 입 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 현실의 까칠한 살갗도 꿈처럼, 기억처럼 어루만져야 한다. 우리, 살아온 세월만큼의 숨가쁜 기다림 뒤에 오는 것이, 버린 詩語처럼 비릿한 슬픔으로 녹아내린, 씨물 속에 핀 허무의 꽃 뿐이라 할지라도. 얼룩진 배암같은 서체를 휘감고 다니다 바람따라 지워지면 당신, 처음인 듯 다시 써야 하리. 아침이면 받침 잃은 활자들이 떠도는 미뢰의 꽃방. 詩는 늘 하이빔같은 햇살 아래 알몸처럼 부끄럽다.

                                                                                                              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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