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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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12.09 14:43

흐르는 뼈

조회 수 302 추천 수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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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뼈


                                                                                         이월란



1

지은지 십 년이 지난 나의 집은 아직도 밤마다 뼈를 맞춘다
하루를 버텨낸 적막한 어느 시각 쯤 지붕 아래 하얀 벽면, 삐거덕
찌거덕 푸른 설계도를 비집고 나오는 나목의 손끝을 본다
오늘, 석양에 걸린 뼈마디가 저리 붉다


2

당신은 난해한 뼈를 가졌군요 우지끈, 일어설 때마다 운명이 장난질을 치네요
우연이 필연의 가면을 쓰고 달려드네요
소복 입은 여자가 피붙이의 골분을 뿌리는 해안선 너머
외로움의 빛띠를 두르고 마그넷처럼 서로를 잡아당기는
살아 있던 뼈들, 엎드린 해면 위로 썰물이 지면 솔숲 울리는 바람 사이
파도는 바다에 닻을 내린 뼈들의 함성을 하얗게 기억해 내곤 해요


3

따뜻한 만남 속에서도 차갑게 자라나는 이별의 뼈
붉은 피 도는 살 속에서도 뾰족이 여무는 세월의 뼈
밤이면 수평선으로 누워 바다와 하늘을 가르고
낯선 처음 속에 낯익은 마지막이 흐르듯
단단히 흐르는 뼛속에 가벼이 쏟아지는 세월의 골수


4

내게 부딪쳐 오던 살보다 뼈가 더 시린 것은
내 손을 꽉 움켜쥐던 인연의 체온보다
내 아이 가느다란 다섯 살 손목을 잡고 걸어왔던 길이 더 따뜻함은
내 어미 누웠던 마지막 자리, 새다리처럼 앙상하게 남아
증발해버린 그녀의 통통한 뼈들이 내게로 흘러왔음이라
정받이 증표로 태반이 도톰히 자랄 때마다
그렇게 많은 뼈들을 다시 맞추고도 거뜬히 살아낸 한 많은 뼈집을
떠나 이제는 한 평 땅 아래 가지런히 두 팔 내린 고요한 뼈


5

태초의 뼈가 흘러내린 나신의 땅
그리움의 동토를 밟았던가, 입 맞추었던가
뗏목처럼, 카누처럼 어린 나무 가득 삶의 변두리를 흐르는 내내
불온한 피를 마저 데우는가, 벼린 촉으로 모반을 꿈꾸는가
(뼈들은 결코 회귀를 꿈꾸지 않는다, 역류하지 않는다)


                                                                                  20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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