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59
어제:
307
전체:
5,024,420

이달의 작가
2009.01.07 14:35

스팸메일

조회 수 273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스팸메일


                                                                                          이월란



급한 메일을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안치며, 찌개를 끓이며, 뉴스를 검색하며, 눈알이 뱅글뱅글 도는데 쨘!! 메일이 왔다. 잽싸게 열어보니 엉뚱한 이름, 어디선가 많이 본, 그러면서도 생소한 이름...... 남편의.... 이름... 각종 스케줄이나 예약, 예매, 확인건 등 한 두마디의 대화로 끝낼 수 있는 자지레한 일도 증거확보가 필요한 중대사처럼 <메일로 보내> <메모해 둬>라며 상관이 비서에게 명령하듯 해온 것이 늘 기분이 썩 좋진 않았던 참에.


<활자화된 증거들은 늘 날 안심시켜. 특히 너와 나 사이엔. 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십년 전에 기분 나빴던 일로 시비를 거는 여자니까. 흐흐흐> 잠꼬대같기도, 환청같기도 한 그의 목소리에, 메일을 기다리던 기다림에 대한 실망이 와락 짜증으로 덮치면서 커서가 열받은  듯 <스팸메일 신고> 아이콘 위에 반짝 떴다. 검지를 누르려던 찰나, 달랑 두 마디의 본문이 눈에 들어왔다. <하이! 선물!> 첨부파일로 돈뭉치가 왔을린 없고 무슨 증거 확보할 사건이 또 있었나, 짚어보며 파일을 열었다. 사람과 자연, 예술과 기술이 합쳐진 신비한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펼쳐졌다. 즐거워지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가만, 이 사진들이 지금 어디에서 날아온건가.


퇴근하자마자 <밥 되면 불러>, 겁나게 바쁜 상관처럼 이층으로 올라가버린게 어제였나? 오늘이었나? 갑자기 덮치는 치매기에 놀라 우당탕탕 올라가보니, <땡큐>하러 오는 줄 알고 반색을 했다. <봤지? 멋있지?> 한 지붕 아래서도 머릴 맞대고 잠시 사진감상도 할 수 없을만큼 우린 별보다 더 먼 일상의 거리를 갖고 있었나보다... 어룽어룽 반색(斑色)빛에 눈이 멀자 평생 철들지 못할 것 같은 그의 천진한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스팸메일 취급하며 사는 사소한 일상이 쇠약해질 우리들의 노년에선 행복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메일로 저장되어 있을거야. 이 헛똑똑이 아줌마야. 흐흐흐>
          
                                                                                          2009-01-0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91 날씨, 흐림 이월란 2010.05.30 393
1090 날아다니는 길 이월란 2008.05.10 364
1089 견공 시리즈 날아라 엘리(견공시리즈 89) 이월란 2011.01.30 490
1088 날아오르는 사람들 이월란 2012.01.17 336
1087 남편 이월란 2008.05.10 292
1086 남편 죽이기 이월란 2010.12.26 456
1085 제1시집 낭연(狼煙) 이월란 2008.05.09 329
1084 낯선 곳에 가면 이월란 2010.05.18 475
1083 내 그대를 그리워함은 이월란 2010.08.08 408
1082 내 그리움에선 단내가 난다 이월란 2009.08.25 448
1081 내 당신을 이월란 2008.05.10 232
1080 내 마음의 보석상자 이월란 2008.05.09 370
1079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이월란 2008.05.09 481
1078 내 안에 있는 바다 이월란 2008.05.07 569
1077 내게 당신이 왔을 때 이월란 2010.04.18 434
1076 제3시집 내부순환도로 이월란 2008.10.30 365
1075 냉정과 열정 사이 이월란 2009.09.12 472
1074 너를 쓴다 이월란 2008.05.10 268
1073 견공 시리즈 너를 위한 노래 (견공시리즈 100) 이월란 2011.05.10 371
1072 너에게 가는 길 이월란 2008.05.08 460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