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66
어제:
183
전체:
5,020,607

이달의 작가
2009.01.07 14:35

스팸메일

조회 수 273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스팸메일


                                                                                          이월란



급한 메일을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안치며, 찌개를 끓이며, 뉴스를 검색하며, 눈알이 뱅글뱅글 도는데 쨘!! 메일이 왔다. 잽싸게 열어보니 엉뚱한 이름, 어디선가 많이 본, 그러면서도 생소한 이름...... 남편의.... 이름... 각종 스케줄이나 예약, 예매, 확인건 등 한 두마디의 대화로 끝낼 수 있는 자지레한 일도 증거확보가 필요한 중대사처럼 <메일로 보내> <메모해 둬>라며 상관이 비서에게 명령하듯 해온 것이 늘 기분이 썩 좋진 않았던 참에.


<활자화된 증거들은 늘 날 안심시켜. 특히 너와 나 사이엔. 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십년 전에 기분 나빴던 일로 시비를 거는 여자니까. 흐흐흐> 잠꼬대같기도, 환청같기도 한 그의 목소리에, 메일을 기다리던 기다림에 대한 실망이 와락 짜증으로 덮치면서 커서가 열받은  듯 <스팸메일 신고> 아이콘 위에 반짝 떴다. 검지를 누르려던 찰나, 달랑 두 마디의 본문이 눈에 들어왔다. <하이! 선물!> 첨부파일로 돈뭉치가 왔을린 없고 무슨 증거 확보할 사건이 또 있었나, 짚어보며 파일을 열었다. 사람과 자연, 예술과 기술이 합쳐진 신비한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펼쳐졌다. 즐거워지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가만, 이 사진들이 지금 어디에서 날아온건가.


퇴근하자마자 <밥 되면 불러>, 겁나게 바쁜 상관처럼 이층으로 올라가버린게 어제였나? 오늘이었나? 갑자기 덮치는 치매기에 놀라 우당탕탕 올라가보니, <땡큐>하러 오는 줄 알고 반색을 했다. <봤지? 멋있지?> 한 지붕 아래서도 머릴 맞대고 잠시 사진감상도 할 수 없을만큼 우린 별보다 더 먼 일상의 거리를 갖고 있었나보다... 어룽어룽 반색(斑色)빛에 눈이 멀자 평생 철들지 못할 것 같은 그의 천진한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스팸메일 취급하며 사는 사소한 일상이 쇠약해질 우리들의 노년에선 행복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메일로 저장되어 있을거야. 이 헛똑똑이 아줌마야. 흐흐흐>
          
                                                                                          2009-01-0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1 미로아(迷路兒) 이월란 2008.05.10 299
610 사랑 2 이월란 2008.05.09 299
609 회향(懷鄕) 이월란 2008.05.09 299
608 영문 수필 Ethnographic Fieldnotes of Utah-Korean 이월란 2011.07.26 298
607 기억의 방 이월란 2009.01.27 298
606 바람의 혀 이월란 2008.10.21 298
605 나에게 말 걸기 이월란 2008.06.24 298
604 바람을 낳은 여자 이월란 2008.05.18 298
603 제2시집 광녀 이월란 2008.05.10 298
602 공항대기실 이월란 2008.05.09 298
601 디카 속 노을 이월란 2009.07.27 297
600 나는 모릅니다 이월란 2008.05.10 297
599 꽃덧 이월란 2008.05.10 297
598 제2시집 진주 이월란 2008.05.10 297
597 영문 수필 Life in Early Jamestown 이월란 2010.10.29 296
596 흐린 날 이월란 2008.05.10 296
595 가을소묘 이월란 2008.05.10 296
594 마중물 이월란 2008.05.09 296
593 염색 이월란 2011.05.10 295
592 진화 이월란 2009.11.11 295
Board Pagination Prev 1 ...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