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07
어제:
307
전체:
5,024,468

이달의 작가
2009.01.13 14:26

걸어오는 사진

조회 수 342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걸어오는 사진


                                                             이월란



오래된 앨범 첫 장엔 젊은 엄마가 웃고 있다
살아서 웃고 있는 나보다 젊은 엄마
네 명의 아이들이 양쪽으로 둘 씩 나란히 손을 잡고
전생의 꿈처럼 걸어오고 있다
귀밑 3cm의 단발머리에 교복을 단정히 입은 큰언니
체크 반바지 아래로 짧은 종아리가 슬픈 남동생까지
피에로같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나는
얼굴이 닳아빠져 내가 버린 오래된 인형같다


시내버스 털털대며 만세교를 지나고 승가람 지나
당도했을 직지사, 비로전 앞마당쯤 되었을라나
주말 관광지에서 사진사로 마주친 낯익은 동네아저씨
작은 돌멩이 하나를 앞에 던져두고, 요기까지 걸어오세요


열 손가락 챙챙 묶어 물들이던
봉숭아꽃 곱게 빻던 그 돌멩이처럼
지평선 아래 가라앉은 햇등이 되고 말았어도
엄마보다 늙어버린 어린가족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비밀도 많았던 우리집, 가장 비밀스럽지 않았던 순간이
앨범을 펼칠 때마다 폭로되고 누설되어도
손잡고 걸어오는 미소들만 물살처럼 환히 번지는데


바람둥이 아버지는 어디 가셨을까
꽃대마다 지쳐 휘어진 엄마의 꽃무늬 원피스는
아직도 꽃가루 분분이 날리는데
자, 요기까지 걸어오세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해탈한 웃음으로, 열반에 든 신비한 걸음으로
몇 장의 사진같은 生을 넘어 오세요
환히 걸어 오세요
저 돌멩이처럼 작은, 붉은 꽃물 배여 더욱 가까워진
生과 死의 경계를 건너 오세요


찰카닥!

                                                            2009-01-1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1 편지 1 이월란 2010.06.18 396
590 제3시집 편지 2 이월란 2010.06.18 386
589 유령 블로그 이월란 2010.06.18 408
588 이젠, 안녕 이월란 2010.06.28 384
587 그리움 7 이월란 2010.06.28 350
586 니코 이월란 2010.06.28 335
585 나를 파먹다 이월란 2010.06.28 432
584 견공 시리즈 아무도 몰라요(견공시리즈 72) 이월란 2010.06.28 489
583 제3시집 페르소나(견공시리즈 73) 이월란 2010.06.28 375
582 견공 시리즈 이불(견공시리즈 74) 이월란 2010.06.28 389
581 견공 시리즈 시선(견공시리즈 75) 이월란 2010.06.28 418
580 졸개 이월란 2010.06.28 375
579 마지막 키스 이월란 2010.06.28 462
578 영문 수필 Words That Shook the World 이월란 2010.06.28 390
577 영문 수필 Sign Language 이월란 2010.07.09 363
576 견공 시리즈 화풀이(견공시리즈 76) 이월란 2010.07.09 377
575 견공 시리즈 귀(견공시리즈 77) 이월란 2010.07.09 351
574 절수節水 이월란 2010.07.09 380
573 이별이래 이월란 2010.07.09 452
572 새벽 이월란 2010.07.09 420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