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32
어제:
142
전체:
5,026,375

이달의 작가
2009.01.15 12:27

줄긋기

조회 수 402 추천 수 2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줄긋기


                                                                       이월란

  


탯줄로 연명하고 탯줄 따라 딸려나온 나는 줄긋기를 좋아했다
줄이 보이면 잡고 싶었고 또 따라가고 싶었다
어릴 땐 교실 나무책상 중간을 칼로 휙 그었었고
운동장에선 맨땅을 긋고 또 그으며 땅따먹기에 정신을 팔았으며
한길에선 줄 따라 앙감질로 해가 푹푹 질 때까지 깨금집기를 했다
그렇게 분리를 일삼았고 경계를 즐겼다
줄은 칸을 만들고 네모진 칸들은 나를 가두었다
금 밟으면 쫓겨나는 열전의 유막, 벗어나거나 옮겨야만 했다
한 쪽 벽에 줄을 긋고 문을 내면 종종 밖에서 잠겨 있기도 했다
버릇처럼 줄을 긋고 나를 감는다
줄을 긋다보니 줄을 서는데도, 줄을 세우는데도 익숙해져 버렸다
줄은 수평선처럼 잔잔한데 내 몸은 출렁이며 어지럽다
결코 누군가를 향해 조준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마주서서 잡아당기는 줄은 팽팽한 칼날이 되어
나를 자르기도 한다
결코 눈금을 새기지도 말아야 한다
종이쪼가리나 전광판에 새겨진 무서운 숫자들은
종종 완전범죄의 모살자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모눈종이처럼 모눈이 많이 새겨진 칸들은
나를 해부하기 딱 좋은 수술칸이 되기도 했다
절개는 늘 출혈을 부른다
줄이 많고 그래서 칸도 많아진 원고지 위에서
칸마다 점점이 나를 흘려 두기 시작한 것도
이 줄긋기의 악습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허망한 세상의 줄들을 가늠하는 넓은 한 쪽 창틈에서
동네 아이 하나 줄을 비집고 나오고 있다
무심한 작대기를 땅에 질질 끌며 가고 있다
나는 또 익숙하게 딸려 간다

                                                              2009-01-15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91 견공 시리즈 엘리와 토비(견공시리즈 87) 이월란 2010.12.26 434
1190 그리움이 이월란 2010.12.26 370
1189 남편 죽이기 이월란 2010.12.26 456
1188 제3시집 공항대기실 3 이월란 2010.12.14 349
1187 B and B letter 이월란 2010.12.14 441
1186 쓰레기차 이월란 2010.12.14 402
1185 변기 위의 철학 이월란 2010.12.14 502
1184 제3시집 작은 질문, 큰 대답 이월란 2010.12.14 403
1183 인형놀이 이월란 2010.12.14 421
1182 전설의 고향 이월란 2010.12.14 444
1181 견공 시리즈 이별 연습(견공시리즈 86) 이월란 2010.12.14 477
1180 견공 시리즈 애완(견공시리즈 85) 이월란 2010.12.14 453
1179 지지 않는 해 이월란 2010.12.14 406
1178 고백 이월란 2010.12.14 362
1177 영문 수필 Between Public Morality and Private Morality 이월란 2010.12.14 489
1176 영문 수필 Media and Politics 이월란 2010.12.14 175157
1175 영문 수필 YOGA: Wake Up My Body 이월란 2010.12.14 417
1174 제3시집 함정이 없다 이월란 2010.11.24 451
1173 향기로운 부패 이월란 2010.11.24 413
1172 마음 검색 이월란 2010.11.24 401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