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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01.19 14:12

접싯밥

조회 수 280 추천 수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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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싯밥

                
                                                                 이월란



처음 시집을 오니
70년대 이민을 오신 낯선 시어머니는 밥을 접시에 퍼 주셨다
끼니 때마다 접시춤을 추는 이국의 늙은 무희처럼
위장은 비었고 접시는 넓었다
퍼나르는대로 허기진 식도를 채워 줄 것같은 식탐이
첫 발 디딘 넓은 대륙같은 접시 위에서 하얗게 웃고 있었다
각자 담아가는 반찬들로, 식탁이 차려진 후 곧바로
파장의 어수선한 장터가 되버리는 뷔페식 에고이즘
맨땅에 삽질하듯 기술적으로 퍼올려야 했던 접싯밥은
어설픈 웃음으로 돌아서던 문화충격 만큼이나
깊이 없이 번지르르 넓어지던 인간관계 만큼이나
허황된 미래를 홀라당 까발려 놓은 운두 낮은 접안거울처럼
미지의 바닥을 핥으라 했다
얼마나 먹은건지, 얼마를 더 먹어야 하는건지
내가 통째로 올라 앉아도 될 만한
가늠할 수 없는 공기(空器)의 영역을 기어코 헤아려보듯
이젠, 습관적인 한 술에도 정량의 경계를 부딪혀주며
아직 남아있는 가슴의 깊이가, 좁아도 푹신하게 여유 있는
작은 공기에 밥을 푼다
쉽게 떠나왔어도 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어렵게 돌아가는 길
좁은 입 속으로 깊은 가슴을 채워나가는 生의 식사를
이젠, 내 어미의 지문같은 봄꽃 계절 모르고 피어 있는
오목한 사발에 밥을 푼다
침발린 젓가락 부딪히며 한 술 한 술 반찬을 날라오더라도


                                                            200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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