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224
어제:
307
전체:
5,024,585

이달의 작가
2009.01.19 14:12

접싯밥

조회 수 280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접싯밥

                
                                                                 이월란



처음 시집을 오니
70년대 이민을 오신 낯선 시어머니는 밥을 접시에 퍼 주셨다
끼니 때마다 접시춤을 추는 이국의 늙은 무희처럼
위장은 비었고 접시는 넓었다
퍼나르는대로 허기진 식도를 채워 줄 것같은 식탐이
첫 발 디딘 넓은 대륙같은 접시 위에서 하얗게 웃고 있었다
각자 담아가는 반찬들로, 식탁이 차려진 후 곧바로
파장의 어수선한 장터가 되버리는 뷔페식 에고이즘
맨땅에 삽질하듯 기술적으로 퍼올려야 했던 접싯밥은
어설픈 웃음으로 돌아서던 문화충격 만큼이나
깊이 없이 번지르르 넓어지던 인간관계 만큼이나
허황된 미래를 홀라당 까발려 놓은 운두 낮은 접안거울처럼
미지의 바닥을 핥으라 했다
얼마나 먹은건지, 얼마를 더 먹어야 하는건지
내가 통째로 올라 앉아도 될 만한
가늠할 수 없는 공기(空器)의 영역을 기어코 헤아려보듯
이젠, 습관적인 한 술에도 정량의 경계를 부딪혀주며
아직 남아있는 가슴의 깊이가, 좁아도 푹신하게 여유 있는
작은 공기에 밥을 푼다
쉽게 떠나왔어도 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어렵게 돌아가는 길
좁은 입 속으로 깊은 가슴을 채워나가는 生의 식사를
이젠, 내 어미의 지문같은 봄꽃 계절 모르고 피어 있는
오목한 사발에 밥을 푼다
침발린 젓가락 부딪히며 한 술 한 술 반찬을 날라오더라도


                                                            2009-01-19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1 졸개 이월란 2010.06.28 375
1050 제3시집 페르소나(견공시리즈 73) 이월란 2010.06.28 375
1049 꽃시계 이월란 2010.03.30 375
1048 제3시집 세컨드 랭귀지 이월란 2009.12.09 375
1047 체중계 이월란 2009.02.08 375
1046 제1시집 빈가지 위에 배꽃처럼 이월란 2008.05.09 375
1045 노을 4 이월란 2012.02.05 374
1044 범죄심리 이월란 2010.08.08 374
1043 편지 3 이월란 2010.07.19 374
1042 아버지 이월란 2010.03.15 374
1041 미개인 이월란 2010.03.15 374
1040 사랑빚 이월란 2009.12.31 374
1039 손끝에 달리는 詩 이월란 2009.10.29 374
1038 욕망을 운전하다 이월란 2009.04.22 374
1037 음모(陰謀) 이월란 2008.05.08 374
1036 초보운전 이월란 2012.05.19 373
1035 아홉 손가락 이월란 2010.02.28 373
1034 이민 간 팔용이 이월란 2009.08.29 373
1033 견공 시리즈 인간시계(견공시리즈 10) 이월란 2009.08.06 373
1032 눈(目)의 고향 이월란 2009.05.09 373
Board Pagination Prev 1 ...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