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by 이월란 posted Feb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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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이월란



산달이 가까워오는 친구의 배를 톡톡 건드려 본다
어느 날은 귀엽고, 어느 날은 짐승처럼 징글맞았다
수박통 같은 아기집 속엔 부드러운 무기가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지상 최고의 창과 방패가 빛나는 모순의 신비로운 병기
지구의 반이 굶주리고 있다는 자연도태의 위기설은 강 건너 불이야
생태계의 위험 아래 개체수를 줄이는 자율조정을 외면한 고집으로
휴지기를 감춘 유전자가 3D식 분열을 일삼고 있겠고
휴화산 같은 호르몬도 분화를 멈추고 이젠 엎드려 있겠다
링거액 같은 아홉 달 수액을 받아 마시고 뇌관을 키워온 아인
농담(濃淡) 짙은 홀로그램의 실루엣으로
걸어 다니는 젖병을 자처한 어미의 분만력을 저울질 하겠다
도도한 고가의 악동은, 분양 받으실래요? 실실 웃으며
제왕절개의 꿈을 꾸고 있을까
자연분만의 꿈을 꾸고 있을까
생명을 잉태하는 신의 노릇을 흉내 내며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또 하나의 약자를 탄생시키려
모성의 덫에 걸려버린 친구여
기생충을 낳느니 지골로를 맞이해라?*
부풀고 꺼지고, 또 부풀고 꺼지던 포유의 뱃놀이
지질이도 질긴 직립보행의 뱃길은 팔 십리
녹슨 꿈의 이니셜을 떠올리며
포만감의 심호흡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흘리고 간다
노 키드!!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40가지 이유**를
아이를 낳아야 할 400가지 이유로 대체해버린 살인미소


볼록 꽃밭 같은 그녀의 배가 지나갈 때마다 나의 배가 불러 온다
단단해진다, 곧 진통이 오겠다

                                                               2009-02-04




*  <NO KID>에서 인용
** 심리학자 코린느 마이어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