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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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04.05 11:01

허물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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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벗기



이월란(09/03/30)
  



빈병에 라벨을 붙이듯 입은 옷을 벗을 때마다 체온 한 줌씩 묻어 나온다. 몸을 흔들어 수은을 내려도 중독된 좌우의 체온은 완강하다. 옷을 벗을 때마다 핏줄 한 가닥씩 풀려 나온다. 속임수를 모르는 혈통이 후덕한 군주로 군림할 때마다 생의 고음에서 찢어지던 목청, 그렇게 시간을 다 벗고 나면 이 땅의 누명이 벗겨질까. 촌티나는 목숨을 벗고 나면, 미숙한 핏덩이 재가 되고 나면 나비 등에 엎혀 저 먼산에 눈처럼 누울까. 백성같은 목숨을 탕진한 벼슬아치의 관복을 벗고 나면 대지의 혐의를 그제야 벗고, 살아도 살아도 신참인 가면이 마침내 지워질까. 웃통 벗듯 화상 입은 잔등을 씻어내고 작은새 발자국을 허공에 찍으며 시간의 벽을 넘을까. 낙서같은 가명이 지워진 백지 한 장의 차이로, 구태의 허물을 벗고 그제서야 가벼운 발을 사푼히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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