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2009.04.17 11:34

거래

조회 수 774 추천 수 2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거래



이월란(09/04/15)




떠나 온 고국은
초현대식으로 각색된, 지나온 시절 시절이 차려진 거대한 선물가게다
행인들은, 아무도 두고 온 80년대의 걸음으로 활보하지 않는다
나를 건너뛴 세월은 붙박여 산 그들에게만 부가가치를 새겨두었고
국경을 넘어버릴 망명자에게 잠시 샵 리프팅을 당한 나는
그들 옆에서 같은 공정을 거친, 같은 가격의 선물로 진열되고 싶어진다
버리고 온 것들은 결코 그 누구로부터도 버려지지 않았다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품었는지 일이십년, 단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않은
이민자들은 마음 속에 아직도 성업 중인 골동품 가게 하나씩은 운영하고 있다
흥정 없는 길손의 상행위는 대체 무슨 영리를 꿈꾸고 있나
나의 지갑을 차곡차곡 채워온 그리움의 업보를 거리마다 지불하며
버리고 왔어도 홀로 장성해 있는 공백의 세월 한 줌 선물로 들고 온다
넘치는 지갑으로 불쑥불쑥 충동구매를 일삼는 두 눈엔 모든 것이 면세품이다
낭만으로 포장해버린 뿌리 없는 영세업은 아직도 건재하다
손님인척 나는 또 갈 것이다, 일방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여린 종소리 하나 없이 열리기만 하는
공항의 자동문 너머 차려진 거대한 선물가게로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7 사람내 이월란 2009.04.05 391
1056 허물벗기 이월란 2009.04.05 391
1055 그림자숲 이월란 2009.04.05 389
1054 똥개시인 이월란 2009.04.07 381
1053 가슴귀 이월란 2009.04.07 408
1052 무서운 침묵 이월란 2009.04.07 390
1051 엄마는 생각 중 이월란 2009.04.07 382
1050 오늘은, 삶이 이월란 2009.04.07 407
1049 춤추는 가라지 이월란 2009.04.09 385
1048 사레 이월란 2009.04.09 465
1047 알레르기 이월란 2009.04.09 508
1046 입술지퍼 이월란 2009.04.14 460
1045 모나크나비는 이월란 2009.04.14 434
1044 바다몸 이월란 2009.04.14 376
1043 오늘은, 삶이 2 이월란 2009.04.14 384
1042 염(殮) 이월란 2009.04.14 410
1041 그녀의 펌프질 이월란 2009.04.17 646
» 제3시집 거래 이월란 2009.04.17 774
1039 돌보석 이월란 2009.04.17 453
1038 출처 이월란 2009.04.21 395
Board Pagination Prev 1 ...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