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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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06.06 12:33

E.R. 하나님

조회 수 321 추천 수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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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하나님




이월란(09/06/04)




911이 쳐들어와요 이제 소리치지 않아도 돼요 부러진 팔을 붙여줄 것이며
댕강 잘린 손가락도 붙여 줄 거에요 심장이 멎었나요 뇌사 직전까진 희망이 있지요


순간마다 응급처치로 동여맨 나의 하루를 진단하시고 절차를 밟아주세요
꽃실과 꽃밥으로 수술을 해 주세요 무혈수술도 가능하신가요
난투극은 끝났습니다 인간으로 감염되신 신이시여
수명의 단축키는 삭제하시고 당신의 의술로 병리의 역사를 기술하세요
우리는 당신의 수익금으로 연명하던 불우한 고아랍니다
당신의 호우아래 허우적거리던 이재민이랍니다
저압의 세상을 흐르던 나의 폐포는 이제 고압의 산소를 갈구 합니다
오십보 간 사람도, 백보 간 사람도 응급실의 팻말을 향해
바퀴달린 침상 위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이동 중
소몰이하듯 우우 울부짖기도 하지만
생명은 그리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민감한 사안이죠
민트향의 꽃처럼, 갓 피어난 폴라리스처럼
물소리 거스르는 호흡마다 화목제를 갈구하는 평화의 사절단이었죠
안개도 하산해버린 정상의 허무를 밟기 위해 뼈저리게 오르던
질주는 모른 척 해 주세요
전신의 물 내음으로 생의 목덜미가 흥건히 젖어 와도
물무늬의 파장 같은 주름살 아래
입내 가득한, 손내 충만한 골목마다 질긴 생명이 진저리치던
갈피마다 끼워진 타인의 모습으로 나를 수확해 왔었죠
죽도록 할 일 없어 사랑하고 말았죠
죽도록 할 일 없어 죽음 옆에 잠시 누워 보았죠
부서지는 빗방울처럼 흘러 드릴까요
녹아나는 눈송이처럼 사라져 드릴까요
다른 하늘을 숭배하고 다른 진실을 추종하며
다른 강물에 발을 담근 내가 아직도 보이나요?
붉은 출혈이 한 줌 더 필요하신가요, 숨통을 새싹처럼 틔워드릴까요
혈관 밖의 피는 왜 더 이상 흐르지 않나요
혼수의 잠은 왜 깨어나지 못 하나요
자 하나님, 당신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나를 구원하세요
가물가물 흐려지는 밝기의 등급을 다시 매겨주시고
혼탁해지는 시야 속에서 푸르도록 시린 하늘이 되어 주세요
모니터로 타전되는 나의 심장은 이제 별처럼 반짝일 수 있어요
젖줄처럼 흘러나온 혈액이 누명처럼 나를 벗어버리기 전에


어느 주말 밤에 맛본 포도주의 맛처럼
하늘창고에선 체온 같은 노을이 익어가고 있네요
(사망진단서는 비상계단으로 올려 보내세요)



* emergency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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