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2
어제:
194
전체:
5,030,371

이달의 작가
2009.08.06 13:25

마로니에 화방

조회 수 445 추천 수 2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로니에 화방



이월란(09/08/05)



서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큰언니가 오는 주말이면 나는 괜스리 그림처럼 앉아있고 싶었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간질이던 긴 생머리만큼 긴 인생이 그녀의 카키색 가죽부츠처럼 내 발에 맞지 않는 만질 수만 있는 신발 같을거라 여기곤 했던 것인데


그녀가 풀어놓은 헬로우키티 삼각자와 지우개가 잠시 품어도 좋은 꿈처럼 필통 속에 진열되고 나면 역전 앞 가방집 옆 셀로판지에 황금손처럼 싸여있던 복숭아맛 같기도 참외맛 같기도 했던 바나나 한 손이 그녀의 손에 들려져 <아버지 드릴거야> 냉장고 위에 얹혀질 때면 닿을 수 없이 허기지는 목숨의 높이가 거기쯤일거라 여기곤 했던 것인데


그녀가 화실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약국 옆에 마로니에 화방을 차렸을 때 <마로니에 화방>이란 거대한 간판이 옥상 위에 며칠간 내팽개쳐져 있었고 아버진 <화구일체>를 <화구일절>로 새기다니, 간판쟁이와 며칠째 언쟁을 벌이셨고 <마>자부터 <방>자까지 먼셀 표색계를 펼친 듯 점점 옅어지는 초록빛이 기억처럼 또 선명해지는 것인데


쯧쯧쯧 아버지의 혀차는 소리 이명처럼 들릴 때면 내 생의 그림을 완성할 화구들은 <일체> 진열되어 있는 것인지 <일절> 거두어가버린 것인지 썼다 지웠다 썼다 지우는 무식한 간판쟁이가 되고 마는 것인데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1 오징어의 배를 가르며 이월란 2010.03.15 494
950 눈별 이월란 2010.03.15 442
949 아버지 이월란 2010.03.15 374
948 미개인 이월란 2010.03.15 374
947 견공 시리즈 마흔 다섯 계단(견공시리즈 58) 이월란 2010.03.15 414
946 영시집 If the Moment Comes Again 이월란 2010.03.13 387
945 영시집 A Mist and a Virus 이월란 2010.03.13 340
944 영시집 The Shaking House 이월란 2010.03.13 370
943 영시집 A Dried Flower 이월란 2010.03.13 358
942 영시집 The Reason 이월란 2010.03.13 376
941 영시집 A Solitary Cell 이월란 2010.03.13 403
940 영문 수필 My Unconditional Best Friend, Toby 이월란 2010.03.13 3207
939 관(棺) 이월란 2010.03.05 453
938 대출 이월란 2010.03.05 451
937 장사꾼 이월란 2010.03.05 401
936 견공 시리즈 빛으로 샤워하기(견공시리즈 57) 이월란 2010.03.05 390
935 견공 시리즈 설거지하는 토비(견공시리즈 56) 이월란 2010.03.05 394
934 주차위반 이월란 2010.02.28 442
933 자동 응답기 이월란 2010.02.28 506
932 제3시집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이월란 2010.02.28 380
Board Pagination Prev 1 ...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