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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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10.08 10:19

흑염소탕

조회 수 643 추천 수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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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탕



이월란(09/10/08)
  


겉보기론 제일 실해 보였던 넷 째 언니는 전남 영광의 원자력 발전소 사원 아파트에서 영광스러운 신혼살림을 차렸었지 그런데 첫 아이를 들쳐 업고 친정으로 들락거리는 모습은 꼭 원폭 맞은 히로시마 잔존민의 모습이었어 천식이었는지 신혼의 방사선에 오염되었는지 그녀는 사경을 헤매기도 했는데 어느 날 아침 앞마당엔 흑진주빛 흑염소 한 마리 음메 음메 울음에 묶여 있었어 식칼을 들고 행주치마를 펄럭이던 엄마만 주시하고 있었는데 건너 뛰고 싶어 빨리돌리기를 누른 호러무비처럼 쌔까만 흑염소는 그 날 저녁 바로 밥상에 올라왔었지 비틀린 모가지와 피바다를 연상하는 동안 엄만 예쁜 흑염소를 끌고 백정에게로 갔던거야 언니는 흑염소탕을 먹고 음메 음메 살아났고 원자력 발전소는 핵폭탄의 저력으로 나날이 발전했지 타국과 시댁이라는 두 개의 폭탄이 수시로 폭파되던 나의 영광스런 신혼 때는, 천식같은 외로움에 그리움의 원자폭탄이 매일 투하되던 그 시절엔 아무도 나를 위해 예쁜 흑염소를 앞마당에 묶어두지 않았어 흑염소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다 음메 음메 울며 스스로 목줄을 끌고 백정에게로 가 처단되어 싶어지곤 했었는데 양키들의 땡큐 땡큐 소리가 음메 음메 소리로 들리곤 했었는데 흉내내다 그친 듯한 어설픈 솔렉의 한국식당에 흑염소탕이 있다는거야 샤브샤브 징기스칸도 없고 all you can eat 흑돼지 삼겹살도 없고 명동칼국수도 없는 이 곳에선 웬 흑염소탕만 사시사철 끓여대는 것인지 몰라 육개탕에 세월의 기름만 둥둥 띄워 놓은 듯한 흑염소탕 한 마리 올려 놓고 예쁘고 까만 염소의 살점을 오돌오돌 씹어먹다 보면 흑백이 섞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혼혈의 국가에서 흰염소를 흑염소라고 속인 듯 흑염소들의 음메 음메 소리가 동시통역되고 있었지 쏘리 쏘리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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