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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11.16 13:23

가을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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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죽이기



이월란(09/11/12)



사랑을 잃어도 좋을 계절


가을만큼 가식 없는 계절이 없다
가을만큼 적나라한 계절이 없다
가을만큼 솔직한 계절이 없다


버리고 죽어가는 것들이 낱낱이 발각되는 계절
죽은 가을의 시체들은 썩는 냄새조차 순하다
늙어가는 세월의 앙상한 팔들


이토록 참혹한 가을보다
화사한 봄과 함께 동반자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니
소생하는 생명과 밝은 봄빛에 더 절망하는 사람들
가을은 자연으로부터 위로 받는 계절임에
하늘도 저리 높은 것이겠다


폐허가 되어도 슬프지 않은 계절
이 스산한 가을저녁 대신
어느 누가 더 적막해질 수 있을까


두 발로
혼자 서고, 혼자 걸어가고,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우린 모두 가을에 태어난 천진한 아기들


가을엔 역시 포옹하는 연인보다
헤어지는 뒷모습이 어울린다
내내 충혈되어 있는 가을의 두 눈 속에
설법처럼 내리는 죽은 잎들의 증언


딱딱한 껍질을 벗고
폐허의 축제로 나오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가을의 전령이 되지 않을 수 없겠다


우리가 당도해야 할 가을의 끝에는
언제나 Dead End 라고 새겨진 팻말이 있어
날숨마다 성에꽃을 피우는 가을의 끝에는
다 잊고 돌아나올 수 있는 망각의 눈이 내리고


하얀 지우개밥처럼 내려 쌓이는 망각의 눈
흉흉하게도 우릴 지탱해주기 위해 붉은 심장 위로
잊을 때까지 내리고 또 내리고


우편함 속엔 매일 그가 보낸 낙엽편지
활자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눈길 닿는 풍경마다 그가 보낸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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