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긴수염고래

by 이월란 posted Jan 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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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긴수염고래



이월란(09/12/31)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 흰긴수염고래)


코끼리만한 혀로 나를 핥으며 집채같은 이빨로 나의 영토를 헤집던 꿈속의 세월 앞에서 나는 휑하니 비어버린 살점들을 채우느라 토실토실한 문장들을 살 속에 구겨넣으며 살았다고, 레드 데이터북의 멸종위기 리스트에 오른 150톤의 시간은 연약한 약탈자들과의 혈전에서 심심찮게 투항했다 수천억마리의 크릴 같은 육신을 삼키며 잠수를 했다 솟아오르는데 쥐라기의 지층에 묻힌 디노사우르의 화석보다 큰 세월의 척추가 휘는 소리, 신선한 공기를 위해 수면 위로 뛰어오를 때마다 남극의 빙산 아래로 수몰하는 나는 살아 헤엄치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나의 발은 공룡의 발자국처럼 느려지고 싶다


성큼, 건너뛰어버린 달력의 숫자들이 파먹혀버린 새우껍질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