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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10.02.28 08:14

아홉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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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손가락



이월란(10/02/23)
  


야간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이름도 모르는 그는
등 보이는 두 손을 내밀며 로숀병을 눈짓으로 가리킨다
손 씻었니? 서로 웃자고 하던 장난질 속에서
그의 손가락들이 어느 지점에선가 간격이 벌어져 있음을 알았다
손가락은 언제 잘라 먹었어?
그 순간, 아픈 줄도 몰랐었지 잘린 쇳조각들이 무시무시한
그 쓰레기통으로 쳐박혀 버렸어
찾았어도 소용 없었대 하필 관절이었거든
내 주위에 어떤 놈은 네가 20대 아가씬줄 아는 놈도 있어
내 뒤통수만 보았군 누나를 놀리면 못써 잘 가라는 내 미소에 살짝
기름을 부을 줄도 아는 이 순진한 친구
세상이 킥킥, 너의 그 순진무구한 웃음같다면
다 늙어빠진 세상도 20대로 보이는 너의 친구란 놈은, 낙천주의자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관절을 물고 달아나버린
너의 잘린 손가락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으로 기어들어가는,
쇳조각같은 타인의 기억의 날에 살을 베이는
나는, 비관적인 이상주의자
잘린 검지를 살짝 오므리면서도 아홉 손가락 당당히
펼칠 줄 아는 너는, 현실주의자
나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묻지 않고
그의 잘린 손가락이 되어 접붙인 듯 관절을 꺾어보고
또 꺾어보고,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퇴역군인의 잘린 팔처럼 떠도는 과거가
뚝뚝, 내 발등에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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