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5
어제:
184
전체:
5,020,690

이달의 작가
2010.03.22 15:34

호스피스의 유서

조회 수 435 추천 수 4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호스피스의 유서



이월란(10/03/18)



어제 막 입원수속을 마친, 환자 같은 꽃들이
나무병원 가지마다 고개 내미는 봄입니다
임종의 가을은 수시로 계절과 계절 사이로 찾아옵니다
내가 나누어 준 안락한 눈빛들은 내게 걸어두는 주문이었습니다
마지막이란 말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아는 것과 닥친 것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내게도 언젠가 찾아올 그 불치의 병을 한 때, 그리워했습니다
불모의 땅에서도 무성한, 암종 같은 그리움
페나인 알프스에 사는 성 베르나르의 수녀처럼
두 손 모아 마음의 성지를 다독여 왔습니다
여행자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기 위해 나는 문지기처럼
늘 다정하게 웃고 있었지요
단정히 씌워진 머릿수건처럼 내게 드리우던 병상의 시트들은
산천의 머리를 하얗게 덮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었지요
온 생의 병상 위에서 끙끙 앓던 잔병치레
완쾌의 그 날을 기다립니다
나의 고단한 허리 아래 누워있던 말기의 환자들처럼
나도 당신의 가슴 아래 누워 봅니다
산다는 건, 묻지 않아도 대답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습니다
진료실 같은 우주 속, 창밖의 봄꽃들은
마취에서 깨어난 듯, 저리 막 날아다니는군요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91 오징어의 배를 가르며 이월란 2010.03.15 494
690 휠체어와 방정식 이월란 2010.03.15 467
689 영시집 Longing 이월란 2010.03.22 347
688 영시집 The Island of Language 이월란 2010.03.22 336
687 견공 시리즈 그 분의 짜증(견공시리즈 59) 이월란 2010.03.22 444
686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월란 2010.03.22 466
685 기다림이 좋아서 이월란 2010.03.22 417
684 가시나무새 이월란 2010.03.22 390
683 절망에게 이월란 2010.03.22 396
» 호스피스의 유서 이월란 2010.03.22 435
681 흙비 이월란 2010.03.22 523
680 꽃시계 이월란 2010.03.30 375
679 타로점 이월란 2010.03.30 426
678 안개 이월란 2010.03.30 443
677 그대 없이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이월란 2010.03.30 722
676 아이스크림 차 이월란 2011.09.09 380
675 고인 물 이월란 2011.09.09 270
674 영시집 The way of the wind 이월란 2010.04.05 445
673 영시집 Rapture 이월란 2010.04.05 469
672 봄눈 1 이월란 2010.04.05 448
Board Pagination Prev 1 ...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