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의 시간

by 이월란 posted Sep 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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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시간


이월란(2010/09)



Dawn to Dusk

집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
도로공사 중 정체로 차창 밖으로 무심히 읽어본 정문 간판에
오픈시간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결코 들여다보지 않았을 피안의 시간
산 자들의 시간을 베껴 놓았다
후퇴나 전진이 없는 평화로운, 아름다운 정체라고 하자
불황 없이 나서는 한적한 교외의 나들이처럼
행인들의 시야 속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고 하자
아라비아 숫자보다도 저토록 정확한 공표라니
삶의 장르처럼 공공연히 선언해 왔던 시작과 끝이
저리 간결한 표현으로 낙엽처럼 걸려 있다니
목숨을 버리고도 저들은 모여 살고 싶은 걸까
나도 저기에 묻힐까
이젠 집이 되고, 고향이 되어버린 이 이방의 도시 한복판에서
나의 시간도 저 풀밭에 이장을 시킬까
지금은 오후 3시, 주차를 시키고 묘비명들을 읽다가
나의 이름과 마주치고 싶진 않은 시각
누워버린 사람들은 노을이 새겨 놓은 빗돌이 되었다
인공 잔디 위에서 매일 동쪽과 서쪽으로 키가 자라는
해탈한 그림자 하나씩 키워보는 저, 입이 무거운 사람들
으슴푸레 밝아오기도, 어두워지기도 했던 경계를
도심 속에서 고요히 펼쳐 놓은 저 지상의 시계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않는 녹슨 철문에
비명처럼 걸려 있는 저 나지막한 무덤의 시간
붉은 깃발의 사인이 STOP에서 SLOW로 바뀐다
정지된 네 개의 바퀴가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네비게이터에 출발지와 목적지가 뜬다

미명에서 박명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