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함정이 없다

by 이월란 posted Nov 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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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이 없다


이월란(2010/11)


전쟁의 유물처럼
어딘가에 지뢰가 숨어 있으리라 여겼다
적들의 교란은 통신망 밖에서 무사하여
한 치의 오차 위에서만 잠이 들고
종종 제한속도를 넘어버린 미친 질주로도
촘촘한 지뢰망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리라 여겼다
방금 출고된 신차처럼 매끈한 몸뚱이로도
무섭게 나뒹구는 날이 있으리라 여겼다
그리곤 어디론가 이송되리라 여겼고
적재유무만을 살피고 통과시켜버린
검문소의 허점이 눈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날이 쉬이 있으리라 여겼다
일상의 평화를 악용한 심리전의 교묘한 술책이
목줄을 감아쥐는 날도 있으리라 여겼다
훈련 삼아 몇 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하리라
그리곤 절벽 아래서 수직의 높이를 끝도 없이
타고 오르는 그런 것이라, 여기기도 했던 것인데
하, 단조롭기 짝이 없다, 사는 것이
새겨 보건데, 옹졸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하여서
높은 적중률로 불티나게 팔리는
종합문제지와도 같은 것이어서
기존의 문제들이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해묵은 시험 같은 것이어서
맞추지 않아도 길이 되는 목숨 앞에
맑은 눈으로 응시하면 안개 속에서도 길이 나고
어둠 속에서도 동공이 먼저 알고 커지는
홑진 길이었다, 진정
함정은 없었다, 함정은 내가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