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어제로부터

by 이월란 posted May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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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어제로부터  


이월란(2011-5)


걸어 다니지 않는 모든 것들은 일제히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내외하듯 비낀 시선 사이로 그것들도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거라 여겼다면 꽃대 같은 내 몸이 한 순간에 한 자리에서 훅 지더라도 그다지 서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속에서 앓다 진 것들이 어디 한 두 잎이라야 말이지

진 것들은 하나 같이 총알 같아서 녹슨 탄피처럼 박혀 구석구석 파상풍을 퍼뜨리고 있는데 총질 한 번 해 본 적 없었다는 사실, 총질 한 번 당해 본 적 없었다는 사실, 외상도 없었을 뿐더러 사망률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것

그러고도 주머니 많은 옷만 골라 입은 날따라 달달한 것이 당기는 걸 보면 하염없이 하염없이, 주머니 가득 탄피처럼 쌓이는 외로움만 지천이야 일편단심 팔딱팔딱 뛰는 푸른 정맥 같은 길을 따라가면 불치의 날들마저 모두 퇴원해버린 병동 아래 반듯이 눕게 되는 거라

한 박자 놓치면 절대 공연되지 못하는 무대 위에서, 한 순간 놓치면 절대 탈 수 없는 환승역에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살지 않으면 때마다 배가 고파오는 나조차 환산해 주지 않는 곳에서 멀리

아주 멀리 간 후에 넌지시 건너다본다면 꿈의 부레가 둥둥 떠다니는 적도의 바다 가운데서 기억을 합성하는 순간, 조작되는 순간, 영원한 오류로 재생될 수 없는 과거 속에서 깜빡깜빡 “당신의 미래는 지금 버퍼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