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2
이월란 (2014-10)
나의 아버지는 바람이었다
누군가는 아비가 종이었다고
또 누군가는 공산주의자였다고 했지만
나의 아비는 바람이었다
그분이 지나갈 때마다 꽃이 흔들흔들
뿌리 없는 것들은 휘익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기도 하였다
이마가 서늘해질 때마다
눈 밑에선 고드름이 자랄 때마다
보이지 않던 그 분이 보였다
세상이 흔들리면 그분이 지나간 거였다
물정 모르는 햇살이 비칠 때면
가벼워진 어린 것들은 담벼락을 붙들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엄마의 혼잣말이 늘어 가면
바람이 지나간 거였다
지붕아래 냉기가 돌면
바람이 잠시 머물다 떠난 거였다
바람 한 점 없던 날
엄마는 점이 되어 바람을 기다렸다
허황히 떠돌던 그 바람이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높이 높이 사라졌을 때
점이 되어 기다리던 엄마가 바람이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고 읽고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