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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14.10.22 04:25

동백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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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아가씨*


이월란 (2014-10)


일본어가 철지난 유행처럼 입술에 발린, 왜색 짙은 그녀의 존재는 감추고 싶은 식민의 역사처럼 영원히 금지되었다. 온몸을 비틀던 고음은 불행이 살아온 창법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라디오가 꽃을 피울 때마다 뚝뚝 떨어지던 내 엄마.

불법 복제되던 목청은 흙의 노래가 되었다. 손톱이 빠지도록 기어오른 절벽마다 스스로 끊었다는 탯줄을 타고 원수 같은 핏덩이들이 태어났더란다. 불안한 지붕 아래 모로 누울 때마다 꽃에 물 주듯 안약처럼 눈에 눈물을 넣었더란다.

어린 수돗가에 노을이 고일 때면 밤새 생리를 앓은 동백꽃이 양동이 가득 피었더랬다. 수건을 덧씌운 뽀글 머리에서 짙게 풍기던 동백기름 냄새. 웃풍 시리던 유년의 윗목에서 경칩도 오기 전에 꿈틀 깨어나 기지개를 펴던, 그녀는 독한 꽃잎이었다.

나비 한 마리 없던 그녀의 북방한계선에선 겨울에도 꽃이 피었다. 청춘을 보내고 지아비를 보내고 하반신을 버리고도 세상은 걸어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바다는 휠체어로 건넜는데 요단강은 뭘 타고 건넜을까.

칠순의 여가수가 오래된 음반처럼 빙빙 돌아가는 무대 위, 칠순에 꺾인 엄마 꽃이 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 동백아가씨: 1964년도 가요, 한동안 왜색을 이유로 금지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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