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2003.03.05 15:44

장태숙 조회 수:292 추천:31

정전(停電)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정지된 듯한 침묵
컴퓨터가 사살되고
TV가 사라지고
전등불빛이 지워졌다
호흡이 빠져나가는 아득한 소리
공중에서 펄럭이던 손끝은 더욱 깜깜하고
처음 걸음마를 배우던 기억 더듬어
성냥을 찾아가는 위태로운 시간
한 생애 그렇게 살았던 듯 싶은데
겨우 성냥불 그어 촛불 하나 밝힌 듯 싶은데
나는 아직 어둡고
깊은 어둠을 벗어나지 못한 어둠
그 속에서 번뜩이는 갈증의 눈동자가 뜨겁다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과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
세상이 다 그렇듯
나의 한 생이 그렇듯

달콤한 늪처럼 갈 앉는 어둠에
흡수된 나를 불러 앉히는
고독한 적막
기다림은
떠난 순간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수군거리며
한껏 부풀어올라
내 안에 암울한 그리움을 만들지만
비켜서지 못하는 절박함은
눈물꽃 같은 별들
하나, 둘......
피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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