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03.06.02 04:50

장태숙 조회 수:508 추천:33

놈이 내 눈 속을 파고들었을 때
꽃잎들 후두둑 몸을 떨었고
미끈한 놈의 등줄기
둥그렇게 구부러지더니 활처럼 활짝 펴졌다
순간, 공기의 터질 듯한 팽창
레몬나무 둥치를 흔들던 얼룩 고양이
알전구에 불, 탁! 켜지듯, 유정(油井)에 불길 치솟듯
노란 눈알 이글거리며
칼끝 번뜩이듯 쏘아본다
일촉즉발!
레몬나무 허공에서 멈칫 곤두서던 다람쥐 꼬리털
옆 측백나무 속으로 가볍게,
노랑나비처럼 가볍게 날아갈 때
어디선가 따스한 사막바람 불어왔다
공중에서 멈춘 봄 햇살, 길게 한숨 쉬며 내려오고
엄정(嚴淨)한 꽃잎 속에서 소금알 같은 이슬들이 굴러 나온다

올 봄, 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도 정말 그랬더라면


- '문학수첩' 2003년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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