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시냇가

2003.09.11 05:40

장태숙 조회 수:332 추천:26

달빛계곡 사이
꿈틀꿈틀 기어가는 흰 뱀 같은 시냇물
하얀 몸 뒤척이며
부드럽게 밀고 갑니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생(生)처럼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돌돌돌
눈시울 깊게 흐릅니다
얼마나 오래 흐르고 흐르면
바닥에 감춰 둔 하얀 모래 닮은
정갈한 마음 하나 건질 수 있을까요?
가장 낮은 포복으로
배를 미는 그대
어둠 속에서도 투명한 노래를 부릅니다
먼 하늘 흐르던 별똥별
소망을 말하기도 전에
첨벙첨벙
깨끗한 눈물처럼 수면으로 뛰어들고
세상의 더위에 지친 내 벗은 발
서늘한 그대 숨결 속에 씻깁니다
씻고 또 씻어내도
씻을 것이 있었습니다
물풀같이 온 몸을 휘감던 달빛조차
그대 투명한 노랫소리에
긴 머리채를 헹궈내는
그런 한 여름밤입니다

- 우이시 9월호(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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