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서의 한낮
2005.09.11 07:08
계곡에서의 한낮
장태숙
흐르고 흐르다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는 계곡물의 한 생
곧 사그라질 물꽃 피워내며 흐르는데
나는 물가에 발 담그고 앉아
불 켜진 수족관 들여다보듯
한낮의 햇빛 속 눈부셔하듯
얼음처럼 투명한 물 속
오래 응시하네
물의 마음이 저토록 정결하다는 것일까?
하얀 실핏줄 한 오라기까지 환히 비치는 것인데
밑바닥 구르는 모래알의 가는 뼈까지 보이는 것인데
담수어 몇 마리 온몸 뒤흔들어도
흐트러짐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물
찰랑찰랑 꽃보다 고운 물 무늬 만들며
낮은 몸 엎드려 가네
내 혼탁한 마음, 차마 스미지 못하고
폐수의 거품 같이 둥둥 떠밀려 가는
부끄러운 계곡에 들어
상처에 지혈하듯 한결 깊어지는 눈빛 더듬으며
배설의 욕망 거두는 한낮
무구한 눈망울들을 보네
별거 아니라고 빙그르르 웃는 물의 희디흰 이마
엉켜있던 내 시름들
한 꺼풀씩 덜어 가는 말간 물 바람에
하, 그만 쓸쓸해져서 왈칵 눈물이 고이는데
불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
수심(水深) 가득 끌어안는 계곡 물과
그늘 속 오래 침잠한 늙은 고사 목
울음마저 말라버린 초연한 표정으로
묵묵히 나를 보네
(우이시 10월호)
장태숙
흐르고 흐르다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는 계곡물의 한 생
곧 사그라질 물꽃 피워내며 흐르는데
나는 물가에 발 담그고 앉아
불 켜진 수족관 들여다보듯
한낮의 햇빛 속 눈부셔하듯
얼음처럼 투명한 물 속
오래 응시하네
물의 마음이 저토록 정결하다는 것일까?
하얀 실핏줄 한 오라기까지 환히 비치는 것인데
밑바닥 구르는 모래알의 가는 뼈까지 보이는 것인데
담수어 몇 마리 온몸 뒤흔들어도
흐트러짐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물
찰랑찰랑 꽃보다 고운 물 무늬 만들며
낮은 몸 엎드려 가네
내 혼탁한 마음, 차마 스미지 못하고
폐수의 거품 같이 둥둥 떠밀려 가는
부끄러운 계곡에 들어
상처에 지혈하듯 한결 깊어지는 눈빛 더듬으며
배설의 욕망 거두는 한낮
무구한 눈망울들을 보네
별거 아니라고 빙그르르 웃는 물의 희디흰 이마
엉켜있던 내 시름들
한 꺼풀씩 덜어 가는 말간 물 바람에
하, 그만 쓸쓸해져서 왈칵 눈물이 고이는데
불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
수심(水深) 가득 끌어안는 계곡 물과
그늘 속 오래 침잠한 늙은 고사 목
울음마저 말라버린 초연한 표정으로
묵묵히 나를 보네
(우이시 10월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6 | 소음 | 장태숙 | 2006.07.18 | 465 |
85 | 사슴 | 장태숙 | 2006.07.15 | 459 |
84 | 물의 길 | 장태숙 | 2006.06.16 | 410 |
83 | 활화산 | 장태숙 | 2006.06.16 | 409 |
82 | 자슈아 파크의 바위 | 장태숙 | 2006.06.05 | 452 |
81 | 버려지지 않는 것들 | 장태숙 | 2006.06.05 | 479 |
80 | 숨 쉬는 모래 | 장태숙 | 2006.03.24 | 607 |
79 | 보수공사 | 장태숙 | 2006.02.24 | 416 |
78 | 그곳이 비록 지옥일지라도 | 장태숙 | 2006.02.11 | 504 |
77 | 군고구마 | 장태숙 | 2006.02.11 | 486 |
76 | 1월 | 장태숙 | 2006.01.18 | 443 |
75 | 바다가 기침할 때 | 장태숙 | 2006.01.18 | 574 |
74 | 새벽 한 시 속으로 들어가는 오전 아홉 시 | 장태숙 | 2005.11.11 | 465 |
73 | 투신 (投身) | 장태숙 | 2005.10.22 | 451 |
72 | 어둠 밟고 올라서는 새벽향기 - 블루 마운틴 커피 - | 장태숙 | 2005.09.11 | 402 |
» | 계곡에서의 한낮 | 장태숙 | 2005.09.11 | 438 |
70 | 화장(火葬) | 장태숙 | 2005.08.25 | 399 |
69 | 내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 | 장태숙 | 2005.08.25 | 435 |
68 | 딸의 눈물 | 장태숙 | 2005.07.20 | 495 |
67 | 수술 | 장태숙 | 2005.07.02 | 4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