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질항아리

2007.02.12 16:45

장태숙 조회 수:620 추천:47

  금 간 질항아리
                      

주방 찬장 맨 아래 칸이 내 현주소다
태평양 건너 이 대륙까지 참 멀리도 왔다
내 생애 거쳐 온 투박한 길들이 우렁우렁 쏟아지는
감금당한 어둠 속

갑골문자 같은 낡은 문신
고국의 흔적인 듯 까끌한 뱃가죽에서 녹슬어 가고
오래 전 내게서 살다 간 것들
하나하나 호명하며 흑백사진 더듬는 노인처럼
침침한 눈빛으로 만지작거린다.

봉숭아 씨앗보다 작은 꿈조차 줄줄 새나가는
내 몸의 가는 틈새
물 알갱이 하나 머물지 못하고
더부살이 악수 청하는 감자나 양파식구들
흙의 기억 떠올리며
너덜너덜 삭은 날개로 감싸 안는다

아슬아슬 살아냈던 지난날보다
지금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내 퇴적의 입김 속에서
부패되지 않고 오래 견고 할
내 안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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