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迂廻)

2007.10.28 20:12

장태숙 조회 수:884 추천:77

     우회(迂廻)
                            장태숙

살아야했다
짧지 않은 답보(踏步)의 시간
수직을 향한 타성은 물어뜯긴 자리에 묘비를 세우고
낮은 포복으로라도 기어가는 수평의 덩굴손
고양이 등처럼 둥글게 말아 숨죽여 뻗으면
경계의 끝에 걸리는 팽팽한 촉수
안간힘으로 목숨의 끈 움켜쥔다.

차가운 담장 따라 게걸음으로 걷는 등나무
살점 뜯긴 커다란 구멍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새순 밀어 올리던 날부터 손가락 관절들
싹둑싹둑 잘라먹던 옆집 개
쇠창살 담장은 완벽한 단절을 하지 못했고
녀석의 기습적인 공격을 방관했다
사나운 이빨이 닿지 않을 경사진 땅 가늠하는
저 덩굴손의 긴장된 집중

여린 나무에게도 눈이 있다
그 눈으로 모진 세상을 보고
생각을 만들고 걸음을 익힌다
깊은 숨 몰아쉬며 천천히
눈치 채지 않게
은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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