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격려해주신 스승님들의 이야기

                                                                                              鄭用眞  詩人

1. 이당 안병욱(怡堂 安秉煜) 선생님의 격려 말씀

 

이 세상에 삶 속에서 만남은 가장 소중한 감격이다.

친구와의 만남(朋友有信),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師弟), 부부간의 만남(夫婦緣分)과 같이 소중한 만남은 없다.

나는 대학 생활 때 스승 안병욱 선생님을 만났고 그의 강연에 심취되어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를 따라 우리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흥사단(興士團) 단우가 되었다. 나는 그 후 흥사단을 통하여 애국 애족의 길과 조국 독립의 소중함, 그리고 바른 인생의 삶을 배웠고 이것이 나의 인격형성의 모태가 되었으며 참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항상 스승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고 나도 글쓰기를 거듭하여 시집과 수필집 등 10여권의 저서를 출간 하였다.

19828월 안병욱 선생님 내외분은 로스엔젤레스 동부 온타리오에서 아내와 땀 흘려 농사를 짓는 내 농장을 방문하셔 우리 내외의 이민정착을 격려 하셨고, 방문을 기념하여 우리 민족 구국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그의 심경이 고요하기가 무거운 산과 같다. 는 정중여산(靜重如山)과 장자(莊子)의 들을 수 없는 신의 소리, 양심의 소리, 를 들을 줄 알라는 청무성(聽無聲)을 써 주셔서 주야로 묵상하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는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 이제 스승은 가셨어도 그의 남은 숨결은 소중하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국강산(祖國江山)’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친필휘호와 내가 좋아하는 제갈량의 날이 맑으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날이 궂으면 서재에 들어 책을 읽는다.’(晴耕雨讀)는 안병욱 스승님의 친필 휘호를 나의 서재에 걸어두고 창작에 심혈을 쏟고 있다. 그리고 또 스승님께서는 나의 수필집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의 머리말을 이렇게 써 주셨다.

인생은 너와 나와의 깊은 만남이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다. 즐거운 만남 속에 행복이 있고 보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와 나와는 30여년이 넘는 깊은 사제관계(師弟關係)를 갖는다. 그는 대학시절에 나의 책을 읽고 나와 두터운 사제간이 되었다.

나는 그를 아끼고 그는 나를 따른다.

원예(園藝)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20여 년 전에 도미하여 로스엔젤레스 근교에서 장미원(薔薇園)을 경영하고 있다.

그의 장미원에는 수만 그루의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 있다.

나는 1982년 여름, 미국에 갔을 때 그의 농장에서 행복한 하룻밤을 보냈다.

그는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겸손하다.

그는 밭을 갈고 꽃을 심을 뿐만 아니라 시를 짓고, 글을 쓴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경인(農耕人)인 동시에 시를 쓰는 문경인(文耕人)이요, 마음의 밭을 열심히 가는 심경인(心耕人)이다. 수양인(修養人)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나의 생일에는 언제나 빨갛게 핀 장미꽃을 손수 가꾸어 나의 책상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곤 했다.

나는 그의 따뜻한 정성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미국 땅에서 성()과 열()을 다하여 눈물겨운 노력 끝에 성공의 큰 기념비를 세웠다. 1981년에 미국에서 <강마을>이라는 첫 시집을 출간했다.

금년에 <장미 밭에서>라는 제2의 시집을 내놓았다.

이제 미국의 이민 생활(移民生活)을 자상하게 기록한 수상집<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를 출간한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소박하고 아름답다.

이 수상집에는 뜨거운 민족혼(民族魂)과 조국에 대한 향수(鄕愁)와 씩씩하게 살아가는 개척혼(開拓魂)과 성실한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는 미국 땅에 한국혼(韓國魂)을 심고 있다.

성실의 모자를 쓰고 정직의 허리띠를 두르고, 근면의 신을 신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앞길에 맑은 빛이 항상 비치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19896

서울 城北洞 栖碧庵에서

怡堂 安秉煜

2. 고은(高銀) 시인 형님의 격려 말씀

19991015일 평소 친분이 두껍께 아끼고 대화를 나누던 산인(山人) 권순창(權純昌) 시인이 별세하여 자신의 유골 장례 집례를 나에게 유언하여 태평양 서해안 산 페드로 바닷가에 뿌려주고 로스엔젤레스 한영식당에 50여명의 미주문인들이 고은시인 환영연으로 모인자리에서 고은 시인께서 나와 결의형제 맺기를 말씀하셔 러브샸으로 인사를 드린 후 고은시인님을 내 집으로 모셔 와서 결의형제 맹약의 예를 갖추고 형제가 되었다.

이제 나의 제2 수필집 시인과 농부에 올려주신 고은 시인님의 추천의 말씀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이 세상에 와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내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리라. 그 여러 사람 가운데 정용진도 있다.

비록 우리가 서로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나 나에게 그는 해묵은 사람인 것만 같으니 웬일일까. 그래서 그의 시도 산문도 해묵은 낯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미주 샌디에고는 보석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도시이다. 그 일대의 넉넉한 바다는 또 어찌 그다지 죄 하나 지어 보지 않은 쪽물로만 가득한지, 이런 자연을 감히 인간이 따를 수 있을까.

그 샌디에고 교외 저쪽으로 돌아가노라면 거기 황막한 훨부룩 언덕배기 드넓은 평지에 온통 장미꽃 5만 송이가 피어 아침 이슬을 한껏 머금고 있는 농원이 있다. 그 농원에 시인 정용진이 그의 부인과 함께 밭두렁에 나와 있는 것이다.(두 아들은 동부 보스턴으로 서부의 대처로 나가 있다.)

저녁녘이면 그들 부부는 흡사 바르미종의 밀레 만종풍경이리라.

정용진은 이곳을 그의 제2 모국으로 삼고 시의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빛은 대지위에 내리 꽃이는 햇살을 피하지 않아 늘 번들번들 땀이 밴 구릿빛 얼굴로 함박웃음을 웃어 영락없는 평생 농부인 그이다.

밤이면 몸을 단정히 한 책상머리에서 혹은 시를 가다듬고 혹은 수필을 쓰다가 말다가 하고 혹은 고금의 책을 읽어 가기도하는 것이다.

진작에 그는 시집 <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를 내놓았고 에세이집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도 간행한바 있다.

이번 산문집 <시인과 농부>도 그 후의 것들을 모아 배열한 것이라 한다.

내가 2년 전 미국 체류 중 마침 서부에서도 몇 차례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정용진을 만난 것이다. 만나자마자 그의 허허로운 심덕에 호응한 나머지 그의 집까지 멀다 하지 않고 가보았던 것이다.(그들 부부는 내가 잔 방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한다.)

그 이래로 그는 나에게 복된 아우이고 나는 그에게 그냥 막막하기만 한 형이 되고 말았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과 이사장을 중임했고 또 미주문학상도 수상했는데, 그만큼 객향에서의 그의 모국어 수호는 먼저 자신을 구원하는 것과 함께 이웃의 위안이 되는 의의로 나가고 있다.

그의 시세계 또는 에세이의 표현들은 한결같이 자연, , 시대에의 성실한 귀의와 인간 옹호를 주조로 삼고 있다. 이번 글에서도 그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한 여러 사색들이 담겨 있다.

그것이 때로는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비탄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를 말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서정그것이다. 이민생활의 수고 중에도 이런 인간에 대한 고전적인 애찬이 있어 그가 가꾸는 꽃은 장미만이 아닌 것이다. 글 중에는 아직 밭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좀 덜 마무리된 곳도 더러 보이는데, 나는 이런 곳에서도 그의 시인 농부로서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다.

언제 만나 포도주 한잔 하세그려!‘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실만이 참삶의 비결이란 생각으로 이제까지 살아왔고 남은 여생(餘生)도 이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내 생애 속에서 나를 격려해주고 인정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해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분들인데,

내 젊을 시절 나를 격려해주신 정신여고(貞信) 김필례(金弼禮). 박희경(朴熙敬). 두 교장선생님과 이귀남(李貴男) 교감선생님께 늘 감사하고 태양금속공업주식회사 창업주 한은영 회장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1971년 아내 이선옥(李善玉)과 결혼하고, 가라 하심에 정든 고향 갈대아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처럼. 미주로 옮겨와서 내가 서울에서 다니던 연동교호에 시무하시던 백리언 목사님이 미주로 오셔서 시무하시는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창설하신 국민회관과 흥사단 단소 부근의 제퍼슨가에 로스엔젤레스 한인연합장로교회를 나갔는데 여기서 귀한 두 분을 또 만났다.

집사람이 나보다 1년 늦게 미주에 온 후 호수돈여고 선배이신 차경수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차 선생님의 많은 지도를 받았다. 차 선생님은 대전이 아닌 개성의 호수돈여고 출신의 집사람의 대 선배이시다. 내가 이민 초기 힘든 노동을 하면서 우드버리 대학을 다닐 때였는데 항상 조용하신 한 어르신이 부르신다기에 찾아 뵈웠더니 내가 정용진 집사를 눈여겨보아 왔는데 남을 속일 사람으로 안 보여 이민 정착을 위해 좀 도와주려하네, 하시는데 하시는 말씀이 미국에서는 영주권이 없이는 공부도 사업도 하기가 힘드니 내가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 5천 달러를 무상으로 빌려 줄 터이니 사업을 해서 영주권을 받고 후에 돌려주게 하신다. 이분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존경하시고 애국부인회에서 수고하시던 박경신 여사님으로 차경수 장로님의 언니 되시는 분이었다.

우리 내외는 너무 크신 은혜와 도움을 입고, 로스엔젤레스 다운타운 부근에 조그마한 그로서리 마켓을 구입하여 땀 흘려 일하고 성장한 후 빌려주신 돈을 잘 값고 그 뒤 온타리오로 옮겨와서 농장을 구입하여 경영하였다.

여기서 또 귀한 분을 만났는데 일본 구주농대를 유학하시고 동국대학에서 농과대학장을 역임하신 김종희 박사님이시다.

마음이 선량하시고 섬세하셔 농사일을 일일이 지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우리 내외 성공의 디딤돌이 되게 하신 분으로 지금도 늘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다.

그 후 해람장로교회에 봉직 하면서 백리언목사님의 후임으로 부임하시고 한국신학 대학을 나오신 이창식 목사님을 만나 그분의 신앙의 지도로 장로 장립을 받았고 미주 정착의 기틀을 다진 후 샌디에고 북부 훨부룩으로 옮겨와서 에덴 장미 농장을 개척 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지신(知新. James) 지민(知民. Joseph) 두 아들을 키우고 그들을 귀한 가정에서 잘 자란 따님들과 성가 시켜 손자 손녀를 얻으면서 오늘에 이른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1981년 첫 시집을 발간하였을 때 이창식 목사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격려해 주셨다.

 

마을自然

人間回復의 염원이 로 승화된 작품

(한국일보 LA 198184(화요일) 이창식 목사(목회학 박사)

 

역사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회에서는 시와 사색의 언어가 사라져 간다고 한다.

시의 불모지 같아서 시집이 나오기가 어렵다고 들어온 이곳 교포사회에 또 하나의 생수에 비길 수 있는 시집이 출간되어 뜻있는 사람들의 기쁨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 동인들과 친우들의 기쁨 속에서 발간된 정용진씨의 시집강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민의 고뇌로 밤을 지새워본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찾아주는 시집이라고 여겨진다.

이 시집은 그 저자 자신이 이 책의 말미에서 스스로 밝힌바 있으나, 정용진씨는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가 아니면서, 또한 시단에 데뷔한 경력이 없으면서, 그리고 기성문인들의 추천을 받은 바도 없으면서 다만 시가 좋아서 꾸준히 시작을 계속하여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시 자체의 문학적 표현의 기교에 얽매이기 보다는 시정이 메말라가고, 점차 인간성이 일그러져가는 이민의 삶의 탈출구를 찾는 일에 보다 구체성을 보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시집의 차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시의 주제들이 자연과 향수, 또한 조국애 등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정용진씨의 인간이해에서 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연. 향수. 조국애를 主題로 다뤄

가좋아 시작, 마음의 고향 역할

그는 인간 소외의 현상을 빚어내는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꼈기에 자연을 시로 읊었고, 사람을 비인간화로 몰고 가는 사회의 구조악을 증오 하였기에 불의에 항거하는 시를 썼다고 여겨진다. 그의 인간회복의 염원이 시의 언어로 승화되었다고 본다.

이민의 현실이 자기에게 인간이기를 거절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그 Identity를 찾아주는 시집이라고 여겨진다. <이창식 LA>

한편 내가 1971년 미주로 학업을 연마하려고 왔을 때 이선주 산생님은 미주에 지사를 연 동아일보사 미주지국 미주동아편집국장을 하고 계서 인인이 되어 서로 만나게 되었고 내 글이 미주동아에 수시로 게재 되었으며 2003년 나의 두 번째 에세이 시인과 농부가 출간 되었응 때 그리스챤 헤럴드에 이렇게 올려 주셨다.

 

크리스찬 헤럴드 이선주 고문

<에세이> 시인과 농부 02/28/2003

 

이 책 머리에 붙인 시 '농부의 일기"의 첫줄에서 독자는 저자 정용진 장로의 체취와 인품에 흠뻑 젖고만다. 그는 자신을 밭가는 농부로 비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샌디에고 근교 훨부룩 마을에서 에덴 장미농장을 경영하며 살고있다. 미국까지 와서 농장에서 일을 하고있다는 말에 의아해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21세기 초에 접어든 현대 후기 문명이 자아내는 폭력적인 혼돈에 염증을 느끼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환경이 아닌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생명의 신비를 음미 할수 있는 한가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 정용진 장로를 아는 이들은 그가 허름한 농부처럼 소탈하고 겸허한 분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가롭게 생명의 신비를 감상적으로 음미하는 범부(凡夫)가 아닌점도 알고 있다.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꽃입도 가꾸지만 역사의 한 복판에서 불의에 대항해 생명을 걸어온 사회 운동가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기에 그가 읊고 있는 시 구절 "진종일/삶의 밭에서/불의를 가려내듯/잡초를 추리다가/땀 솟은 얼굴을 들어/저문하늘을 바라 보면/가슴 가득 차오르는/영원의 기쁨."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정 장로를 70년대 초부터 사귀어 왔고 지난 30연 동안 한편으로 동포사회의 문화를 배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 향상과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동지로 살아왔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또 그의 표현대로 영원의 기쁨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나름대로 간직할 영원의 기쁨에 대해 나 나름대로 짐작하는 법칙이 있다. 그의 사회 참여의 동기를 나 나름대로 추리해 보는 것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때 그는 시를 썼고 한문 지식이 풍부하였고 게다가 도산을 흠모하는 흥사단 단우였다. 그러니까 그가 사회운동에 참가한 것은 그의 지성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비 민주적인 유신체제가 한국에서 선포되었기 때문에 절대 권력을 함께 비웃으며 한인사회 최초의 앤솔로지<지평선>을 펴냈었다. 그때 서울에서는 김지하 시인의 5적시가 회오리 바람을 이르키고있었다. 그 뒤 김재규씨의 거사로 유신 독재가 끝장나는가 싶더니 신군부가 쿠테타를 이르켜 광주 대학살 이라는 참극까지 저질렀다. 그때부터 정장로와 나의 이른바 반정부 운동은 거칠어졌고 <뿌리>지에 실린 그의 시들은 무서운 폭탄과도 같았다. 그러니깐 유신체제 이후 광주 민중항쟁을 거쳐 군사독재가 무너질때 까지 정장로가 쓴 시들은 그가 하루종일 잡초를 추려내듯 민족 사회의 불의를 가려내려는 총탄이었음을 알수있다. 정장로가 <시인과 농부> 에 모은 글들은 그가 펴낸 시집 <강마을> <장미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와 수필집 <마음밭에 삶의뜻을 심으며>이후에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글들을 였은 것이다. 그는 마지막 글 "5.18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교훈인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수 없고 민족이 천대 받을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리수 없다."를 되새기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한국의 요동치는 현대사에서 배울 교훈은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살아 갈것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선주 코리아헤럴드 고문)

 

농사의 제일은 자식 농사요. 경작의 제일은 심전경작(心田耕作)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그중 한사람쯤은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는 말씀이 있는데 세상을 성실하게 사노라면 반드시 나의 인생의 안내자가 될 만한 귀한 스승을 만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식물은 재배에 의하여 자라고 인간은 교육에 의하여 자란다.’는 말이 있다. 또한 식물은 물과 햇빛으로 자라고 동물은 힘으로, 인간은 의리로 살아간다.

내 자신이 스스로 잘났다는 자만심에 빠지게 되면 타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고 그 인생이 종래는 고독해 진다.

친구와의 만남에는 의리와 신뢰가,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에는 존경과 사랑이, 부부와의 만남에는 사랑과 이해가 그 생명이요, 첩경이다.

한번 주어진 지상의 삶을 행복을 추구하면서 복되게 살아가자.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좋아하신다. 나의 성공은 내가 스스로 찾고,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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