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정용진 시인

2015.04.07 11:54

정용진 조회 수:131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

201394() 한국일보 정용진 시인

 

눈물은 인간 감정의 진솔한 표현이다.

눈물은 기쁨의 정표이요, 슬픔의 상징이며 분노의 표출이다. 그립고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거나 떠나보낼 때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할 때에는 애통의 눈물을 쏟아내고, 삶 속에서 분노에 찬 일을 당한 때에는 가슴 속에서 복 바쳐 오르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아파한다.

과거 우리 민족이 너무나 힘이 없어서 꽃을 피울 15-16세의 어린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서 몸을 짓밟히고, 마음의 상처를 너무 크게 당했다. 연로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보면서 해방 68년이 지난 오늘에도 치를 떨면서 함께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힘없는 국가가 어찌 이를 보장할 수 있었겠는가.

해방이후 일본으로부터 수 억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온 국민들이 가난에 허덕이던 때라 젊은이들의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위로 보상금은 열외로 넘겨진 채 이제 80세를 넘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어린 유언을 남기시고 한분 두 분 떠나시니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이제 몇 분 생존해 계시지 아니한 이분들의 육체적 정신적 철천지한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 드려야할지 답답할 뿐이다. 이웃 국가 간에 선린우호는 외면하고 좌충우돌하는 극우파 아베 신조 정권은 전범 원흉의 소굴인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부추기고 간악한 일본 각료들이 이에 동참하여 한국과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이참에 한국과 중국이 연합하여 동 아세아에서 일본을 고립시킴이 옳은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04226일에는 정운서 할머니가 운명 하셨고, 광복절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에는 일본군의 만행을 만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섰던 피해자 이용녀(경기 여주 태생) 할머니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82세의 김순악 할머니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은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고생들 하시며 과거의 아픔을 참고 일본 정부의 정직한 사죄와 보상을 생전에 받기를 원하고 계시다. 인간이 세상을 살다가 너무나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면 마음속에 병으로 쌓이고 가슴에 응어리로 뭉쳐 한()이 된다. 더구나 여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역사 속에 정경들을 살펴보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영조로부터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고 그 슬픈 사연을 눈물로 기록한 것이 한중록(閑中錄)”이고, 영친왕의 약혼녀 민갑완이 일본의 야욕에 의하여 약혼자를 이방자에게 빼앗기고 그 아픔을 낱낱이 뼈 속에 새긴 것이 백년한(百年恨)“이며, 김일엽 스님이 일본유학시절 연애에 실패하고 남편과 이혼한 후 스님이 되어 예산 수덕사에 거하면서 말년에 쓴 자서전이 청춘을 불사르고이다. 세분의 저서들이 하나같이 제목만 읽어도 한()으로 가득히 점철 되어 있다. 여자들이 당한 인권유린의 아픔이 얼마나 깊으면 여인들의 가슴속에 서린 한에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고 하였겠는가. 과거 독일의 히틀러 나치정권의 6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죄과에 대하여 늦게나마 빌리브란트 전 총리가 히틀러의 만행에 대하여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하고 피해보상을 하였으며, 이스라엘은 6백만 순교자의 숲을 만들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일본도 자신들의 과거가 정당하다고 후안무치로 고집만할 것이 아니라 이제 몇 분밖에 생존해 계시지 아니한 위안부 할머님과 피해 유족들에게 정당하게 피해보상금을 지급하고 정중하게 사과하여 아름다운 이웃관계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늦게나마 일본인들의 말뚝 테러를 무릅쓰고 미국동부 뉴저지와 서부 글렌데일에 위안부 기림 비를 세워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일본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릴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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