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빠진 바다를 보며

2003.01.10 16:55

조회 수:740 추천:62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싯귀처럼 난 바다가 곁에 있어도 바다가 그립다.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바다.
그래도 나는 더 가까이 있고 싶어 바닷가로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광활한 바닷가-썰물 이였나보다.
물이 빠진 바다를 보면 바다가
그 속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더 정겹다.
바위위에 억세게 붙어있는 검은 홍합 무더기.
사람의 인기척을 듣고
어디로 숨을까 갈팡질팡하는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게들.
아주 쨉싸게 수영하고 있는 어린 물고기들. 여기저기 들러
붙어 있는 스타 휘시(star fish).
바닷물이 좋은가. 오렌지 또는 짙자주색 스타휘시는
예쁘다기보다 거인의 손 보다 크고 뚱뚱하게 살이 쪄서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의 작은 돌들 사이를
걷는데 스타휘시하나가 너무 멀리 밀려 나왔다. 다시
물속에 잠기기까진 꽤 시간이 걸릴텐데 좀 징그러워서
만지기는 싫었지만 혹 목이 말라 죽을까봐 바다 깊숙히
던져주려 두 손가락으로 들으려고 하는데 아주 작은
돌맹이에 붙어버린 스타휘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가 죽을까봐 그래." 하면서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잠시면 스타휘시는 안전하게 물속에 잠겨 숨 쉴 수
있으리라. 그런데 스타휘시를 떼려는 순간 난 휘시밑에
보드라운
살을 보았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안 떨어지려는 그
생명의 섬뜻한 움직임을 보며 다섯자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은 예이츠여인이 떠올랐다.
이렇게 살아 꿈툴거렸을 아니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울부짖었을 발버둥쳤을 그 생명들을 그녀는 어떻게 멈출
수 있었을까.
정말 끔찍해서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녀 손에 죽어간
다섯아이 노아,존, 폴, 루크 그리고 매리는 아직도 어른의
손이 한창 필요로 하는 나이이다.
첫아이가 일곱 살이고 막내가 육개월이니 지난 칠, 팔년
동안 그녀는 임신하고 아기 낳고를 거듭거듭 다섯번이나
한것이다.

저녁 여섯시 만일 남편이 출장가고 없다면 혼자서
두아이를 데리고 어쩔줄 모르겠다는 차라리 병원
이머전시룸에서 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여의사의 말을
참작할때 이 다섯아이를 데리고 동분서주했을 여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는 밥 먹을 시간도 잠 잘 시간도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한 아이가 감기
걸리면 쪼르룩 다 걸려 하루가 멀다하게 병원에 가서
살았을 것이다.
임신한 그녀의 첵업, 아이들 예방주사 그리고 끊임없는
감기..
그녀는 아기의 젖병을 물리며, 학교가는 아이들의 숙제를
돌보아야 했을 것이고, 싸우는 아이들을 말려야 했을
것이며
밀리다 못해 산같이 쌓여있는 빨래속에 파묻혀 울었을
것이다.

산후 우울증과 정신이상.
그녀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어쩜, 자살시도가 도움을 청하던 그녀의 마지막
절규였는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모든것은 너무 늦었다.
그녀가 종신형을 받아 죽을때까지 감옥에 산다해도
한번도 피어보지 못한 그 아름다운 생명들은 따뜻한 숨을
쉴 수없다.

종신형을 받은 폴염.
그 손에 죽어간 엄마와 누이는 다시 돌아 올 수가 없다.
무엇이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 넣는가.
왜 우리는 앞만 보고 뛰어가려하는가.


잠시, 우리 마음을 물이 빠진 바다처럼 비워보자.
무엇이 남는가.
내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어 손을 내미는 이웃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미움과 절망의 싹을 피우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아프고 힘든데 남의 눈을 의식하여 도움의 손을
청하지 못하고 있는가.

물이 빠진 우리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우리 천천히
한번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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