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웃' 당했을때

2007.07.30 13:17

고현혜(타냐) 조회 수:463 추천:55

가슴을 졸이며 야구 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본다.
아들아, 홈런 한 방만 쳐다오.

“준기! 준기!” 우리 팀은 목이 터지게 응원 하지만,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공이 날아가면서 야구장은 긴장된다. 홈런을 바라던 나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아들아, 안타라도 좋다. 한 방만. ‘따아악!’ 오, 볼이 맞았다.
‘파올 볼’.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한번만, 제발..

미국에서 부모들 사이에서 ‘야구는 종교다’란 말이 맞나 보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광신자 증상이 보이기 시작 하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 준기는 이제 9살로 다른 미국 아이들처럼 어려서 티볼부터 시작했다. 야구를 한지는 5년째, 동네 야구팀이지만 마이너 리그에서 뛴지는 2년째가 되어간다.

한인 부모의 시각이라면 이쯤 되면 우리 아이가 야구에 재능이 이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시합 때마다 엄마인 나는 바늘방석이다. 우리 아이가 팀에 기여 하는 것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여러번 중도에 포기해 버릴까 망설인 적도 많았다.

내가 사는 곳은 한인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백인동네이다.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려서 부터 운동을 시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야구가 단연 인기였다.

그래서 나도   둘째 아들에게 야구를 시키기 위해 그 전 단계인 티볼을 하게 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운동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엔 스낵을 준다는 미끼로 동네팀에 넣었는데 본인이 흥미가 없는데다가, 상대적으로 다른 미국 부모들이 너무 열성적으로

야구를 시키기 때문에 게임에 질 경우 우리 아이 때문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만 포기할까’ 할 때 마음을 고쳐먹게 한 것은 보기에도 몸이 불편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온 미국인 엄마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어한다”며 남의 눈을 개의치않고 연습때마다 데리고 왔을 뿐 아니라 게임때 넘어지고 더디어도 ‘아낌 없는 찬사’로 아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다른 미국인 부모들도 설사 그 아이때문에 게임 점수가 나쁘더라도 그 아이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공을 치고, 받고 또 힘들게 달릴 때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찰리! 찰리!”하며 응원을 해줬다.

우리 한인들이라면 이 장애인 엄마와 같은 용기가 있을까?
우리라면 이처럼 장애인 아이를 진심으로 격려해줄 수 있을까?

순간 다른 아이보다 홈런을 잘 때리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하려 했던 것이 아이보다는 엄마인 나의 ‘체면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 한인 부모들은 ‘내 자식이 일등이 아니면 창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아이 셋을 낳아 키워가면서 미국인 부모들에게 느끼는 것은 이들은 부모쪽보다는 ‘자녀편에서 자녀위주’로 아이를 키운 점이다.

장애인이지만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야구를 가르쳐준다. 일등이 안 되어도 좋다. 이같은 부모마음은 같기 때문에 다른 부모들 역시”그 아이때문에 우리 팀이 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아이를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야구를 하면서 아이가 공을 못치면 ‘Good Eye’, 헛 방망이질을 하면 ‘Good Swing’ 아웃이 되면’Good Try’라고 하며 박수를 쳐주면 된다.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아이가
못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아낌없는 찬사’를 줬기때문은 아닐까.
문득, 잘한 것은 말 안하고 못한 것은 크게 나무라는 한인 부모와는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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