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잼보다 더 달콤한 대화

2007.09.24 13:55

고현혜(타냐) 조회 수:733 추천:55

달콤한 간식이 생각나는 오후. 초콜렛을 찾다 보니 얼마 전 참석한 결혼식에서 선물로 받은 딸기 잼이 눈에 띄어 토스트를 한 쪽 구어본다. 아삭 아삭 노릇하게 잘 구어진 토스트에 홈메이드 딸기 잼을 듬뿍 바르며 참신한 아이디어로 파티 훼이버를 준비한 신랑신부에게 감탄한다.

로사와 카로스. 그들은 직접 만든 딸기 잼을 예쁜 작은 병에 담아 그들의 성을 따 '모레노의 딸기 잼'이라 이름을 붙이고 하트 모양의 장식을 일일이 리본에 예쁘게 달아 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병마다 '행복한 부부의 하루 영양 성분'을 프린트해서 붙였는데 왠지 그것을 읽을 때마다 새삼 정말 이렇게 해야하는데 하면서 마음도 가다듬어 진다.

"해피 커플의 서빙 사이즈. 사랑 100% 신뢰 100% 우정 100% 존경 100% 책임 100%. 매일 이렇게 100% 서브 해야 서로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한 결혼이 됩니다."

문득 그 날 한쌍의 잉꼬새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리 멕시코계 3세라도 각 주에서 온 친척들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만일 결혼식에 별 큰 이유없이 안 온 사람들은 일 년씩은 왕따 당하기 때문에 모두들 참석한다고 신랑이 귀뜸해주어서 웃음이 나왔다.

결혼식은 아침 10시에 마쳤지만 저녁 6시에 시작한 리셉션은 밤 11시가 넘어도 끝날 줄을 몰랐다.

수 많은 하객들에게 일일이 왔다갔다 하며 미소를 잃지 않고 인사하는 신랑 신부는 그 바쁜 와중에도 서로 마주 보며 환희 웃는다. 춤을 추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는 사랑스런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부부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별로 할 말이 없는 듯 표정없이 앉아 있거나 다른 사람을 찾아 이야기를 한다. 우리 테이블에 앉아 저녁 내내 부부인지 남인지 무뚝뚝히 앉아 분위기를 무겁게 하던 중년커플은 친척들의 손에 마지못해 끌려 나가 춤을 추고 들어 와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밝아진 분위기 속에 그 부인이 속내를 털어놨다. 부부가 싸웠던 것이 아니라 7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보살피느라고 부부가 한 마디 말할 시간도 없었는데 막상 단 둘이 앉게 되자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낯설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얼마 전 아는 분의 남편이 외국으로 3개월 연수를 갔는데 남편의 부재를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 온 후 만사를 제쳐두고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그동안 자신들의 부부 생활을 되돌아 보며 서로 일에 얽매여 대화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시간을 내어 하는 말도 아이들 교육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사는 부부들도 많은데 그들의 비결은 바로 '부부의 대화'라고 한다. 부부가 단 둘이 보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다는 것은 우리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일이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해피커플이 되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데이트를 하며 가끔씩 자신들의 사랑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자. 오히려 딸기 잼 보다 더 달콤한 결혼생활이라 고백하지 않을까. 부부의 대화시간이 하루 고작 2분 37초여서 다시 태어 나면 이 배우자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슬픈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9월 10일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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