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늪에서
2009.09.02 15:35
돌아가고 싶다.
내 영혼 숨쉴 수 있는 영원한 고향, 그곳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고운 내님의 품에 안기어
아기 사슴처럼 잠들고 싶을 뿐
난 불혹과 같은 사랑의 질시로
포도원 울타리를 파괴하고
뛰쳐나온 한 마리 사슴
허탄한 욕망으로 불타는 한 마리 야수가 되어
암울한 광야를 미친 듯 달렸다.
사과꽃 향기나는
그 열매가 내 눈을 멀게 했고
달콤한 음녀의 사랑은
날 불의에 넘어지게 했다.
날카로운 죄의 가시가
내 살갖을 깊숙이 찔러
선한 님의 가슴에서
석류즙 같은 피를 뚝뚝 떨어지게 해도
허망한 무지개를 쪼ㅈ아
멸망의 길을 달리던
난 한마리 목이 굳은 사슴
뛰어가도 뛰어가도 끝없는 사막
어디에도 나의 초원은 없고
날 기다려 주는이도 없다.
사방은 고통으로 빈틈없이 높이 솟은 절망의 탑들
갈라진 혀와 거친 황페한 땅에
꺼져가는 불의 잿더미와
싸늘한 죽음의 종소리
허탄한 욕망은
깰 수 없는 죄의 빙벽에 나를 고립시켰고
절망의 늪에 빠져
썩어가는 내 살을 까마귀가 쪼아 먹는다.
아! 이제라도 갈 수 있다면
나 돌아가고 싶다.
그리운 내 님의 포도원으로
그러나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떠나왔고
불치의 병을 앓는 내 모습은 너무 흉하다.
울 힘 조차 없는
난
불마져 잘려버린
한마리
불모의 사슴
(1993)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5 | Awakening | 2003.02.08 | 293 | |
24 | 여자 | 고현혜(타냐) | 2008.11.27 | 290 |
23 | 요람속의 작은 사람 | 2003.02.08 | 289 | |
22 | 그 방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86 |
21 | [re] 병상일기 1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85 |
20 | [re] 아버지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85 |
19 | 할머니 성모 마리아 | 2003.02.08 | 283 | |
» | 절망의 늪에서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83 |
17 | 병상일기 1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81 |
16 | 사막을 건너는 법 | 고현혜(타냐) | 2008.11.27 | 274 |
15 | 바다 4 | 고현혜(타냐) | 2009.09.02 | 274 |
14 | 어머니의 길 | 2003.02.08 | 268 | |
13 | Scream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65 |
12 | 머물기 | 고현혜(타냐) | 2008.11.27 | 263 |
11 | 언어장벽 | 고현혜(타냐) | 2009.01.26 | 252 |
10 | Heartache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47 |
9 | 무관심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41 |
8 | 가슴앓이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38 |
7 | Apathy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15 |
6 | People in the Kingdom of Beggars | 고현혜(타냐) | 2008.11.19 | 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