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

2009.09.02 16:00

고현혜(타냐) 조회 수:373 추천:49

겨울의 까만 밤
허전한 완행열차
조금 빈 듯한 가슴과
목언저리가 서늘한 듯한
느낌으로 떠나고 싶다.

임이 없어도 좋고
벗이 없어도 좋다.

먼지가 자욱 낀 창가에
이마를 대고 하늘의 별을 보다
멈춰선 정거장엔
누가 내리나
누가 타나
난 멍하니 바라보리.

누군가 혹 아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웃는다 하더라도
난 다시
창가로 눈을 돌리리.

역 이름이 무엇인지
알으려고 갸웃거리지도 않고
그저 내리고 싶은 순간
나 언제나 내리리

하얀 눈이 녹는 강을 만나면
살얼음을 깨어 발을 담가보고
맑은 샘물을 발견하면
한움큼의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리,


그리고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걸어가리.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사랑이니, 우정이니, 인생이니
이런 건 너무 고통스럽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낙엽으로 온 몸을 장식해보고
커다란 나무에 다람쥐처럼
나도 기어올라보리.

토끼처럼 낮잠도 자보고
새처럼 노래도 하고
배고픈 짐승처럼 울부짖어보기도 하리.

모든 것이 싫증난 후
추위와 허기로 지쳐버린 육신을 담은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다시는 떠나지 말자 다짐하리.

하지만
내리는 즉시
난 다시 떠나는 완행열차.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열차의 표를 끊는 나를 보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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