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된 날

2009.09.02 16:42

고현혜(타냐) 조회 수:682 추천:108

오늘 저의 큰 딸이 진짜 학교를 갔습니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를 찰랑찰랑 거리면서 손을 흔들며 교실로 들어가는 내 베이비.
교실에도 못 따라 들어가고 닫힌 교실문을 바라보며 뭉클한 가슴을 억눌러 봅니다.
다양한 민족이 사는 이곳, 캘리포니아.
세상에 모든 엄마는 다 똑같습니다.
모두들 닫힌 문을 바라보며 주위를 맴맴 돌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로 슬기는 혼자서 날개를 퍼득거리는 것 입니다.
자기 몸만한 가방을 옆에 두고 자던 슬기.
그 무거운 가방을 혼자 낑낑들고 가던 슬기.
사랑한 사람과 이별한 것 같다고 하면 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가슴이 왠지 너무 공허한 느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쓴 커피를 한 잔 들고 바닷가에 와 우드커니 앉았습니다.
낡은, 아주 낡은 고기배가 바다 가운데 멈춰서서 슬픈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너무 가슴에 파고 드는 것입니다.
바위가 되어 그 곳에 머물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가슴을 졸이며, 교실 밖에서 슬기를 기다립니다.
과연 오늘 하루가 어땠을까..
교실밖으로 나와 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는 그 눈동자..
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슬기야...."
"엄마, 엄마, 나 숙제해야돼(I have to do my homework, Mom.)."
재미있어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 무서웠어. 조금 두렵다고 했잖아."
"엄마는..무섭긴 내 친구 에마도 있고, 노엘, 알렉스도 있는데, 아, 몰겐..엄마, 몰겐알아."
"아니."
"내가 누군지 내일 가르쳐줄께. 엄마,나 어둡기 전에 숙제해야돼 (Mom, I got to do my homework
before the dark.)."
차를 빙빙 돌며 자꾸 말 시키는 걸 눈치 챈 슬기가 집에 가자고 보챕니다.
"퍼드득..퍼드득..내 가슴에서 날아가는 새소리를 듣습니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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