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병문안

2003.03.13 04:20

김 혜령 조회 수:66 추천:14

슬기 엄마 타냐,

둘 다 아프다며? 이젠 좀 나았는지 궁금. 요즘 직장일이 너무 바빠서 병문안 빨리 못 왔어.
엄마 되니까 아플 때가 제일 서럽고 고약하더라.
전에는 몸이 좀 불편하면 방문 꼭 닫고 누워서 실컷 자거나 뒹굴뒹굴 음악 듣고 책 보며 지낼 수 있어 아픈 게 오히려 감미로울 수도 있었는데, 엄마 되니까 아니더라구. 아프건 말건 엄마라고 끊임없이 찾아대니, 맘껏 아프지도 못하지.
그래서 난 어릴 때 우리 엄마는 절대로 안 아픈 아주 무쇠처럼 튼튼한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슬기가 또 아픈 거, 혹시 "날 좀 보소"가 아닐까? 한번 더 엄마에게 안기고 싶고, 쓰다듬어 주었으면 싶고.
주용이는 내가 우리 아인 참 튼튼해, 하고 방심할 때쯤이면 한번씩 아프더라구.

그날 멀리서 가져다 준 쿠키 주용이가 잘 먹고 있지. 근데 이 아이가 추상예술가 인가봐. 한 입 먹고 "마마, 카", 또 한 입 먹고 "보오트", 한참 먹어 잔뜩 일그러진 걸 들고는 "Moon"이라고 주장하는 거 있지. 나는 그냥 끄덕끄덕. 하긴 그림자 진 달은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의식의 흐름"을 눈에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 언니로 승격한 거 맞아? 난 내가 굉장히 젊어보이고 귀여워서 그러나 보다 착각도 해보고 또 호칭을 맘대로 주문하라기에 "여왕폐하"라고 할까 혼자 꿈꾸고 있었는데.

아이들과 좋은 시간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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