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2007.09.05 06:02
소식은 믿음이었다 오월에 갈 거라는,
믿음은 기다림이었다 오월에 만날 거라는,
허리굽은 엄마 살과의 한 달 삶
-이것도 가져갈래? 저것도 가져가고...
바리바리 싸주시는 틈속에 끼어왔던 고추장
저녁밥상 위 작은 종지기에 담겨있는 빨간 그 무엇
-이거 네가 한국에서 가져온 거야. 이걸 넣어 끓였어
엄마보다 십 년 더 사신
그 목소리 아직 곧은 등처럼 카랑하신 어머니
일 다니는 며느리 배 고플까봐
도착 시간에 맞춰 끓이시는 매운탕
원래 매운탕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가는 법이다
그 중 눈물나게 하는 서너가지
마늘 생강 양파 고추
고추... 지워진 눈물 자국처럼 그 몸 다 없어진 고추
눈빛 살아서 입안에 얼얼한,
한때 고추처럼 강렬했던 당신의 생
숨죽인 것들 오늘저녁 한데 어우러져 다시 죽는다
자꾸만 끓어서 피어 오르는 그리움
-매운탕은 이렇게 눈물나게 매워야 제 맛인게야
눈물이 난다
내가 간다는 소식에
고추처럼 붉게 많은 날 잠 못 드셨을 엄마
가을하늘로 높이 떠 올랐을 그 마음
세월은 또 얼마나 그녀를 후려치며 지날까
살 다 건네준 단단한 생선뼈 아직 남비속에 있고
산다는 것이란 항시 뜨거워야 하는 것인듯
눈물나게 매워야 하는 것인듯
매운탕 끓이는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19 | 가족 | 안경라 | 2005.07.21 | 516 |
118 | 보름달 | 안경라 | 2007.03.09 | 514 |
117 | 받침 하나 | 안경라 | 2011.09.12 | 513 |
» | 매운탕 | 안경라 | 2007.09.05 | 510 |
115 | 기역자 속에 숨어 있는 것 | 안경라 | 2008.02.11 | 503 |
114 | 통화 | 안경라 | 2008.10.24 | 501 |
113 | 기도원에서 | 안경라 | 2006.09.06 | 501 |
112 | 아무는 것들 | 안경라 | 2010.08.31 | 493 |
111 | 가을나무 | 안경라 | 2008.09.24 | 493 |
110 | 품속 | 안경라 | 2006.10.02 | 490 |
109 | 너는 내게 | 안경라 | 2009.06.11 | 487 |
108 | 보(褓) | 안경라 | 2012.07.24 | 486 |
107 | 흔적 | 안경라 | 2007.08.11 | 483 |
106 | 아름다운 남자 -차인홍교수님- | 안경라 | 2005.07.07 | 475 |
105 | 유채꽃 | 안경라 | 2006.03.09 | 469 |
104 | 우리가 서로 | 안경라 | 2007.07.31 | 468 |
103 | 어린왕자 | 안경라 | 2005.06.23 | 466 |
102 | 레몬.1 | 안경라 | 2008.09.25 | 465 |
101 | 그러고 싶어라 | 안경라 | 2005.10.20 | 465 |
100 | 시즌 | 안경라 | 2012.05.24 | 4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