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2005.12.13 06:04
풍금 소리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들은 풍금소리가 되어 사람들 마음속으로 싸이고, 세상의 저녁은 평화로왔다. 난로위에서 가쁜 숨을 토하며 보리차가 끓고 있고, 처마 밑 고드름은 제 팔을 길게 늘어뜨려 바람에 몸을 씻고 있었다.
저녁 무렵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을 갔을 때 큰 아이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뭘 시킬까?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영철은 주방에 있는 아내 영선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난로 옆에 서 있었다. 그 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음, 점심 먹은 게 체했나봐, 아무 것도 못 먹겠어."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남동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아이의 여동생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하게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동안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아는 애들이야?" "글쎄요. 그 집 애들이 맞는 거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영선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영선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개나리 같이 노란 얼굴을 서로 바라볼 뿐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있었다.
"인정이도 이제 많이 컸구나. 옛날엔 걸음마도 잘 못 하더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께."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고...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영선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키를 키워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였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영철은 영선에게 물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예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랬군. 그런데 아이들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 들리던데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남동생 생일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영선의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가난으로 주눅 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아내를 보며 영철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날 저녁의 감동은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풍금소리처럼 지금도 그의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철환 지음 "연탄길" 제1권에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송이들은 풍금소리가 되어 사람들 마음속으로 싸이고, 세상의 저녁은 평화로왔다. 난로위에서 가쁜 숨을 토하며 보리차가 끓고 있고, 처마 밑 고드름은 제 팔을 길게 늘어뜨려 바람에 몸을 씻고 있었다.
저녁 무렵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초라한 차림의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을 갔을 때 큰 아이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뭘 시킬까? "자장면"
"나두...."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영철은 주방에 있는 아내 영선에게 음식을 주문한 후 난로 옆에 서 있었다. 그 때 아이들의 말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근데 언니는 왜 안 먹어?"
"음, 점심 먹은 게 체했나봐, 아무 것도 못 먹겠어."
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말했다.
"누나, 그래도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누나는 지금 배 아파서 못 먹어.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맛있게 먹어." 큰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남동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언니... 우리도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아이의 여동생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고 있는 제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하게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동안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아는 애들이야?" "글쎄요. 그 집 애들이 맞는 거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영선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영선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개나리 같이 노란 얼굴을 서로 바라볼 뿐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한 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 아빠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있었다.
"인정이도 이제 많이 컸구나. 옛날엔 걸음마도 잘 못 하더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다 줄께."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고...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영선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저만큼 걸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키를 키워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였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영철은 영선에게 물었다.
"누구네 집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예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랬군. 그런데 아이들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주방 바로 앞이라 안에까지 다 들리던데요."
"이름까지 알고 있어서 나는 진짜로 아는 줄 알았지."
"오늘이 남동생 생일이었나 봐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영선의 눈에 맺혀 있는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가난으로 주눅 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아내를 보며 영철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날 저녁의 감동은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풍금소리처럼 지금도 그의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철환 지음 "연탄길" 제1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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