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2006.04.24 05:45

이창순 조회 수:228 추천:18

대동강은 저에게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때는 1950년 12월 3일, 연합군과 국군이 후퇴를 하는데 아버지를 기다리던 저희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집을 잠그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대동강을 건널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대동교는 이미 폭격으로 끊겨져 있었고 대신 연합군이 목재로 임시 교량을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그것도 불태워버렸습니다.  철교도 이미 폭격을 맞아 파손이 되어 있었는데 어른 남자들은 몸을 간편하게 해서 철봉을 하듯 겨우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물론 도저히 건널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제 삼촌은 나와 둘이서만이라도 도강을 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님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우리 둘만 도강하도록 허락하셨다면 저는 남한에서 평생 고아로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은 그 정도로 급했기 때문에 삼촌과 둘이서만 남하했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어머님의 반대로 이 제안은 무산이 되었습니다.  제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대동강 강변에는 북쪽에서 내려 온 수많은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달구지들도 강을 건널 수 없었기 때문에 강변에 전부 내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달구지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도강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날 밤이었습니다. 평양시내는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쿼바디스 영화를 보신 분은 로마시가 불타는 것과 같이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이나 넓은 공간에 꽉 차 있던 연합군 차량들은 하루 밤 사이에 다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날이 밝자마다 다시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대동강은 여전히 우리의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어제와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한 낮이 되었는데 능라도로 가면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북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상류 쪽으로 갔습니다. 능라도라는 곳에 갔을 때 사람들이 걸어서 강을 건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물은 어른들 목에까지 찼습니다.  우리 가족들도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동생들은 목마로 태우고 막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쌕쌕이라 부르는 미군 전투기가 피난민들을 향해서 기총소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 흩어지는데 우리도 각기 어디론가 도망을 갔습니다.  잠시 후 비행기가 간 후 사방에서 아우성 소리가 진동했습니다.  여기 저기 시체가 널려있고 이비규환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약 30분 후에 다 만났습니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내려오는데 배 한척이 피난민을 가득 태우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저런 배를 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 배가 뒤뚱거리더니 팍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더러는 헤엄쳐 나가는 사람도 보였지만 그대로 물속에 잠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무도 구조하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한참 내려오는데 또 배 한 척이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줄이 어찌나 긴지 차례를 기다리려면 밤을 새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미군 전투기가 나타났습니다.  그 때 줄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 순간 어머님은 빨리 앞에 가서 줄을 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배가 올 때 우리는 첫 번째로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작아서 온 가족이 타지 못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이 먼저 건넜습니다.  그런데 다시 비행기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당황하니까 그 뱃사공도 피난민이었는데 돈도 좋지만 위험하다며 그냥 배를 버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님이 그 남자에게 매달리며 "우리 아들이 저쪽에 있는데, 한 번만 더 가서 건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 남자는 싫다고 뿌리쳤지만 어머님은 그 남자의 다리를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투였습니다.  결국 어머님의 간청에 굴복한 그 분은 다시 한 번 더 와서 우리 남은 식구들을 태워주었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질뻔한 두 번째 위기였습니다. 그런 회상을 하면서 55년 만에 그 강변을 아침마다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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