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라선생님께 드리는 선물 ^.^

2007.04.20 04:35

금벼리 조회 수:180 추천:30







    벌새의 선물 / 성영라

    곳곳에 펼쳐진 꽃들의 향연에 꽃멀미가 날 것 같은 5월의 어느 저녁,
    일터에서 돌아 온 나는 여는 날 처럼 작은 앞마당을 가로질러
    발걸음도 경쾌하게 현관을 향해 걸었다.
    현관문에 거의 당도했을 때 문득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느낌에
    주위를 돌아보다 눈이 마주친 가디니아.
    그래, 너의 달콤한 숨결이 나를 간지럽혔던 게로구나.

    장난스럽게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대는데 문을 열어준 남편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선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나를 나무란다.
    "쉬잇, 조용조용. 빨랑 안으로 들어와.
    허밍버드humming Bird)가 요기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았어.
    좀전에 당신 때문에 놀라서 어디로 날아갔을 거야."
    그럼, 방금 전에 나를 간지럽혔던 그 느낌의 출처는 허밍버드?

    봄빛에 흠뻑 취해 지내느라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는데,
    남편은 얼마 전부터 앞마당에 종종 출현하는 허밍버드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는 현관 오른쪽 손님용 화장실 창 앞에 건강한 잎을
    사시사철 매달고 사는 나무에다 갓난아기 주먹만한 둥지를 튼 것이다.

    운이 좋았던 남편은 그날 늦은 오후에 허밍버드의 집단장 현장을
    잠시나마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길고 뾰족한 부리로 마른 풀이랑 마치 달걀 껍질처럼 보이는
    하얀 조각들을 열심히 물어다 쪼고
    다지고 붙이는 작업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화장실 창을 통해 숨소리도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이다.

    허밍버드의 출현은 우리 부부에게 그야말로 신기하고
    감동스런 대사건이어서 귀가하는 대로 새의 안부를 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까치발을 하고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단을 내려와
    화장실 문을 소리없이 밀고 들어가서는 커튼 사이로
    눈을 갖다대곤 했다.

    어른 엄지만한 크기의 앙증맞은 새가 샛별눈을
    말긋말긋 응시하며 꼼짝도 않고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얼마나 어여쁜지...
    디지털 카메라에 담느라 진땀을 빼는 사이 눈치빠른 새는
    그만 샤르르 날아가기 일쑤였다.
    덕분에 우리는 콩알 만한 두 개의 알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예쁘고 앙증맞은 새가 많고 많은 집들 중에 우리집을 선택하여
    둥지를 틀고 출산(?)을 한 것이 고마웠다.
    하여, 우리는 최대한 어미와 아기새들의 평화와 안전을 책임지자고
    결의를 다졌다.
    나뭇가지에 물통을 달아주고 출입문을 봉쇄하고
    가라지(garage)로만 다니기로 했다. 집안에서도 말소리,
    발소리를 죽이고 보고싶어 화장실 창을 향해가는
    발걸음을 서로 견제하는 헤프닝을 벌이곤 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열 손가락을 두 번쯤은 꼽아야 할 만큼
    친구들의 베이비 샤워를 준비하고 치르고 하면서
    점점 배가 불러오는 엄마들을 곁에서 지켜보았었다.
    새 생명이 퍼뜨리는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우리집에 산실을 꾸민 허밍버드는
    나로 하여금 마치 녀석의 경험 일부를 나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저다지도 쬐그만 몸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그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거룩하게까지 보이는 행위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 모든 생명있는 것들아 사랑받으라, 축복있으라!,
    소리치고 싶었다.

    열흘이 채 안되었을 즈음, 새가 알을 까고 나왔다.
    잠시 어미새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 둥지를 들여다보니
    까만 벌레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누워 꼼지락거리고 있다.
    생명이 주는 순수한 감동이 다시금 가슴을 친다.
    어미가 얼마나 노심초사 자신들을 돌보고 있는지 그들은 알까?
    새삼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상치 못했던 새의 선물로 인해 올 봄은 더욱 충만한
    삶의 기운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 봄에 잉태되어 겨울에 태어날 또 하나의 새 생명인
    첫 조카 때문에 나는 지나가는 봄과 다가올 계절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게 될 것이다.

    허밍버드 가족은 머지않아 떠나가겠지만 새 식구가 될
    조카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그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봄이 지나가고 또 5월이 오면,
    꽃무더기 속에서 조카아이랑 나비잠을 청하며 잠시동안이나마
    우리집에서 살았던 어미새와 아기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혹시 알까, 그 순간에 지나가던 바람은? 그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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