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썩은 물고기가 산다/길상호

2007.05.24 14:40

성영라 조회 수:154 추천:30

언어는 물고기다
썩으면 지독한 비린내를 풍긴다

어떤 언어는 부레를 너무 부풀려 헤엄을 칠 수 없다. 수
면 밖에 떠 있는 흰 배를 끌고 물속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적당히 바람을 집어넣고 헤엄치는 언어가 자유
로울까, 언어는 동족을 잡아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대개
덩치 큰 놈이 이기지만 작은 놈끼리도 입을 맞추면 순식
간에 큰 놈을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바다 속 언어 중 비
늘 하나까지 온전한 놈은 없다. 가끔 채식을 즐기는 언어
도 있는데 그놈이 뜯어먹고 난 자리에는 어떤 풍경도 남지
않는다.

침묵을 즐기는 언어는 심해로 간다. 놈들은 수압으로 입
을 다스리며 부레 속에 공기 대신 기름을 채운다. 여차하
면 확 불을 지르고 생을 끝낼 참이다. 이런 언어들 중 시詩
라는 걸 쓰는 놈이 있는데, 시라는 게 썩은 물고기 살점을
받아먹으며 만들어낸 것이라 기우뚱 바로 서기가 힘들다

오늘 저 깊은 심해에서 물고기 한 마리 건져냈는데
역시 지독한 비린내를 풍긴다

                                   - <문장>(2006. 10월호) -


***박명용, 최문자, 이은봉, 이승하 시인의 촌평***

시에 쓰이는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다르지 않다. 시인의 정신세계에
의해 조절되는 감각기능을 휘돌아나올 때 새로운 언어가 될 뿐이다.
언어가 썩으면 시에서도 썩은 냄새가 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침묵을
즐기는 언어는 심해로 간다고 하고 있다. 수압으로 입을 다스린 언어
는 새롭겠으나, 이 언어에 기름칠을 하면 시가 부패할 게 뻔하다. 깊
은 바다에서 꺼낸 언어도 물고기가 새롭고자 하여 새 공기를 갈아 넣
지 않으면 역시 비린내만 나기는 마찬가지다. 썩지 않는 시를 쓰기 위
해 시인은 늘 새로움을 갈아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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