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같지 않은 시 3외 1/김용락

2007.09.19 08:36

성영라 조회 수:345 추천:35

시 같지 않은 시 3/김용락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경북 안동 조탑리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댓평 오두막에 막 도착했다

들판에 벼 낟가리 쌓이고

조선무의 흰 잔등이 무청을

늦가을 푸른 하늘로 밀어올리며

턱턱 갈라진 흙 사이로 힘있게 솟구치는

어느날이었다



권선생님 왈



"사진 찍고 이칼라면 오지 마라 안 카디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면 농사는 누가 짓니껴?



이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들을 마구 짓밟고 다니면

작은 생명들이 발에 밟혀 죽니더

인간들에게 생명평화인지 몰라도

미물에게는 뭐가 될리껴?

차라리 집 안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되레 생명평화 위하는 길 아이니껴?"



스님, 순례단원, 지역 시인, 카메라를 맨 기자는

묵묵부답 잠시 말을 잃었다





시 같지 않은 시 4/김용락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분과 함께,

두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 권정생 선생은 모든 상을 거절하는데, 윤석중옹이 권선생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새싹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한 데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다.





- <창비> 2007. 여름호



* 김용락 :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

                시집 <푸른별>,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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