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2011.10.01 05:49

성영라 조회 수:901 추천:115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성영라

    ‘ W 시인 사망, 장례식 마쳤음’. 카카오톡이 딩뎅, 미와 파 그 중간쯤의 음으로 울린다.

    그가 소풍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깊은 밤 한 송이 낙화가 되어 하늘 길을 서둘러 나섰다는 것이다. (ιº o º) 남편과 나의 손이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그물에 걸렸던 것일까. 지금까지 숱한 난관과 치욕을 견뎌냈잖아. 이제는 웅크린 등 쭈욱 펴고 큰 호흡 내쉴 만하지 않았나?

    바로 얼마 전이었다. 카카오톡에 뜬 메시지 ‘소풍 한 조각…’. 초보시인께서 詩적인 문자를 날리셨군. 피식, 웃음이 났었다. 살짝 부러웠다. 뭐야~, 좋은 데 간다는 게지? 불경기라고는 해도 고국의 생활은 여기보다는 여유로운가 보다고, 혼자만 재미나다고, 답글 대신 투덜댔었다. 바람으로 산화한 벗들이여~, 간간이 불러대는 소리에도 무신경했었다.

    우리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중략………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 게 놀러 간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즈음, 음악하는 지인에게서 베르디의 ‘레퀴엠’을 선물받았다. 결국은 그를 위한 추도식 미사곡이 되고 말았다. 평화가 흐르는 동안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적멸의 뒷꿈치에라도 닿았던가. 음악은 끝나고 물 한 잔 마시는데 목울대가 아프다. 물도 때로는 저항을 하는 구나. 그래도 한 모금 물 넘기듯 삶을 넘어가봐야 겠지.

    베란다에 함박꽃 필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친구 하나 죽었다는 편지 쓰고
    편지 속에 죽은 친구 욕 좀 쓰려다
    대신 함박꽃 피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적었다.

    밤 세수하고 머리 새로 씻으니
    달이 막 지고 지구가 떠오른다  
     
    황동규, <풍장 24>
    
    그가 남기고 간 추억 한보퉁이 묻으러 간다. 지구 한 귀퉁이 다시 중심을 잡겠지.
  
    잘 가시게, 시인이여.


*나희덕 시인의 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를 제목에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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