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
2012.01.21 07:43
강원 인제 '한계령']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속 첩첩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다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하덕규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
강원도 한계령부터 양양까지 가파른 산맥을 휘돌아 이어지는 44호선 국도는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한 척의 돛단배의 항로와 같다.
내설악이 시작되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오르면 양희
은씨의 '한계령'이 흘러나오는 한계령휴게소를 만난다.
인제군 백담사와 속초시 노학동을 잇는 미시령도로가 개통되기 전 한계령은 설악산을
지나 동해로 가는 절경의 도로였다.
40여년전 양양사람은 이곳을 '오색령'으로, 인제사람들은 '한계령'으로 불렀다. 한계
령은 감자, 옥수수, 배추 등 영서지방의 농산물과 양양지방의 수산물이 장날마다 오
가는 영서와 영동을 묶는 장소였다.
한계령은 피서철과 단풍철에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도시민 마음의 안식처이다. 명산
설악산의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70년대 소시민들의 아픔과 눈물을 끌어안는
노랫말로 가득찬 양희은씨의 '한계령'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노랫말에 등장한 '산'은 지친 정신과 육체를 끌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찾아온 사람
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안고 살라고 한다.
■ 정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떳다 감은 눈은 정들자는 뜻이요
감았다 뜨는 것은 날 오라는 뜻이라.
산옥이의 팔은야 객구집의 베개요
붉은 애 입술은야 놀이터의 술잔 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민요)
□ 우리나라는 3대 아리랑이 있다. 영남의 밀양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강원도 정선
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은 씩씩하고, 진도아리랑은 구성지고, 정선아리랑은 유장하다.
강원도 사람들이 부르는 대표적 민요 '아라리' 흔히 '정선아리랑'이란 이름으로 알려
져 있지만 강원도 현지 주민들은 보통 '아라리' 또는 '어러리'라 부르는 노래이다.
산이 많아 여름에 소나기가 많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강원도요, 또 고갯길
이 많아 외부와의 교통이 매우 어려웠던 곳이 강원도 이고 보면, 강원도의 지리와 문
화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노래다.
■ 죽서루
관동에 죽서루란 선계에 올라
위태로운 난간에 기대섰더니 여름도 또한 가을 같구나
난간아래 조각배 한 척이 바다로 들어갈 ㄸ
드리운 낚싯대를 울릉도 갈매기 툭툭 치더라 (송강, 관동별곡)
□ 동해의 시리도록 푸른 바다빛에 흠뻑 취해 삼척에 도착하면 잠깐 바다를 멀리하고 태백 준령
과 그곳에서 흘러내린 오십천이 빚어낸 절경을 만날 수 있다. 관동팔경 가운데 최고 최대의 누정
으로 꼽히는 관동제일루 죽서루(보물 제213호)이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오십구비를 돌아 동해로
흘러간다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떨어진 내륙
에 자리잡고 있다. 죽서루감상은 여름이 제격이라면 지금은 제방공사로 말끔히 정비된 강 건너편
에서 죽서루를 건너다 보는 풍광은 단풍이 든 가을이 제격이다.
□ 옛날 실직으로 불리며 영화를 자랑하던 땅, 강원도에서 가장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많았던
삼척이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많은 문이 시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관동별곡은 송강 정철이
죽서루에 남긴 시구이다.
□ 죽서루란 명칭은 옛날 죽서루자리 동쪽에 죽장사가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삼척의 명기 죽
죽선녀의 집이 있어 불려졌다고도 한다.어ㅉ던 아름드리 회화나무와 오죽, 그리고 강변에 접한 절
벽이 빚어낸 절묘한 풍광은 시심을 절로 일으킨다.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와 태종 3년(1403) 부사 김효손이 중건했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
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모두 17개인데 그 중 8개는 다듬은 주춧돌 위에 세우고 나머지 9개
는 자연암반 위에 얹었다. 누대에는 모두 20개의 기둥이 있다.
□ 누안에는 수많은 현판이 걸려있는데 '제일계정'은 허목의 글씨이며, 관동제일루와 죽서루는 부
사였던 이성조의 글씨이고 해선유히지소는 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숙종의 어제시와 율곡의 시
도 걸려 있다.
□ 죽서루 바로 옆에는 지난 91년 2월 문체부가 지정한 '송강 정철의 달'을 기념해 세운 '송강가
사의 터'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정철의 시구 '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내린 물이 / 태백산 그림
자를 동해로 감아가니 / 차라리 한강으로 향해 남산에 이르고져 / 관원의 발길은 한도가 있는데
/ 경치는 보고 봐도 싫증나지 아니하니 / 회포도 많고 많아 나그네 시름 둘데 없다. 가 뚜렷하다.
저 산은 네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속 첩첩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다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하덕규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
강원도 한계령부터 양양까지 가파른 산맥을 휘돌아 이어지는 44호선 국도는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한 척의 돛단배의 항로와 같다.
내설악이 시작되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오르면 양희
은씨의 '한계령'이 흘러나오는 한계령휴게소를 만난다.
인제군 백담사와 속초시 노학동을 잇는 미시령도로가 개통되기 전 한계령은 설악산을
지나 동해로 가는 절경의 도로였다.
40여년전 양양사람은 이곳을 '오색령'으로, 인제사람들은 '한계령'으로 불렀다. 한계
령은 감자, 옥수수, 배추 등 영서지방의 농산물과 양양지방의 수산물이 장날마다 오
가는 영서와 영동을 묶는 장소였다.
한계령은 피서철과 단풍철에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도시민 마음의 안식처이다. 명산
설악산의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은 70년대 소시민들의 아픔과 눈물을 끌어안는
노랫말로 가득찬 양희은씨의 '한계령'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노랫말에 등장한 '산'은 지친 정신과 육체를 끌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찾아온 사람
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안고 살라고 한다.
■ 정선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떳다 감은 눈은 정들자는 뜻이요
감았다 뜨는 것은 날 오라는 뜻이라.
산옥이의 팔은야 객구집의 베개요
붉은 애 입술은야 놀이터의 술잔 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민요)
□ 우리나라는 3대 아리랑이 있다. 영남의 밀양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강원도 정선
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은 씩씩하고, 진도아리랑은 구성지고, 정선아리랑은 유장하다.
강원도 사람들이 부르는 대표적 민요 '아라리' 흔히 '정선아리랑'이란 이름으로 알려
져 있지만 강원도 현지 주민들은 보통 '아라리' 또는 '어러리'라 부르는 노래이다.
산이 많아 여름에 소나기가 많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강원도요, 또 고갯길
이 많아 외부와의 교통이 매우 어려웠던 곳이 강원도 이고 보면, 강원도의 지리와 문
화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노래다.
■ 죽서루
관동에 죽서루란 선계에 올라
위태로운 난간에 기대섰더니 여름도 또한 가을 같구나
난간아래 조각배 한 척이 바다로 들어갈 ㄸ
드리운 낚싯대를 울릉도 갈매기 툭툭 치더라 (송강, 관동별곡)
□ 동해의 시리도록 푸른 바다빛에 흠뻑 취해 삼척에 도착하면 잠깐 바다를 멀리하고 태백 준령
과 그곳에서 흘러내린 오십천이 빚어낸 절경을 만날 수 있다. 관동팔경 가운데 최고 최대의 누정
으로 꼽히는 관동제일루 죽서루(보물 제213호)이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오십구비를 돌아 동해로
흘러간다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떨어진 내륙
에 자리잡고 있다. 죽서루감상은 여름이 제격이라면 지금은 제방공사로 말끔히 정비된 강 건너편
에서 죽서루를 건너다 보는 풍광은 단풍이 든 가을이 제격이다.
□ 옛날 실직으로 불리며 영화를 자랑하던 땅, 강원도에서 가장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많았던
삼척이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많은 문이 시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관동별곡은 송강 정철이
죽서루에 남긴 시구이다.
□ 죽서루란 명칭은 옛날 죽서루자리 동쪽에 죽장사가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삼척의 명기 죽
죽선녀의 집이 있어 불려졌다고도 한다.어ㅉ던 아름드리 회화나무와 오죽, 그리고 강변에 접한 절
벽이 빚어낸 절묘한 풍광은 시심을 절로 일으킨다.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와 태종 3년(1403) 부사 김효손이 중건했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
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은 모두 17개인데 그 중 8개는 다듬은 주춧돌 위에 세우고 나머지 9개
는 자연암반 위에 얹었다. 누대에는 모두 20개의 기둥이 있다.
□ 누안에는 수많은 현판이 걸려있는데 '제일계정'은 허목의 글씨이며, 관동제일루와 죽서루는 부
사였던 이성조의 글씨이고 해선유히지소는 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숙종의 어제시와 율곡의 시
도 걸려 있다.
□ 죽서루 바로 옆에는 지난 91년 2월 문체부가 지정한 '송강 정철의 달'을 기념해 세운 '송강가
사의 터'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는 정철의 시구 '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내린 물이 / 태백산 그림
자를 동해로 감아가니 / 차라리 한강으로 향해 남산에 이르고져 / 관원의 발길은 한도가 있는데
/ 경치는 보고 봐도 싫증나지 아니하니 / 회포도 많고 많아 나그네 시름 둘데 없다. 가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