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비(哭婢) / 문정희
2014.02.08 08:47
곡비(哭婢)/ 문정희
사시사철 엉겅퀴처럼 푸르죽죽하던 옥례 엄마는
哭을 팔고 다니는 哭婢였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
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 주고
그네 울음에 꺼져 버린 땅 밑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 먹고 살았다.
그네의 허기 위로 쏟아지는 별똥 주워 먹으며
까무러칠 듯 울어 대는 곡소리에
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었다.
저승으로 갈 사람 편히 떠나고
남은 이들만 잠시 서성거릴 뿐이었다.
가장 아프고 가장 요염하게 울음 우는
옥례 엄마 머리 위에
하늘은 구멍마다 별똥 매달아 놓았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 그칠 것인가.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옥례 엄마는 곡을 팔고 다니는 곡비이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곡비란 장례 때
곡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곡을 하는 여자를 가리킨다.
옥례 엄마의 천지가 진동하게 울어 주는 곡소리에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다.
그 울음은 가장 아프고 요염하게 우는 울음이 된다. 곧 다른 사람의 한을 풀어 주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울기 때문에 곡비인 옥례 엄마는 시인과 다르지 않다.
모름지기 시인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함께 읽기> 고은, 「곡비」
조선 시대 양반 녀석들 딱한 것들
폼 잡기로는 따를 자 없었다
그것들 우는 일조차 천한 일로 여겼것다
슬픔조차도 뒤에 감추고 에헴에헴 했것다
그래서 제 애비 죽은 마당에도
아이 아이 곡이나 한두 번 하는 둥 마는 둥
하루 내내 슬피 우는 건 그 대신 우는 노비였것다
오늘의 지배층 소위 오적 육적 칠적 역시
슬픔도 뭣도 모르고 살면서 분부를 내리것다
울음 따위는 개에게도 주지 말아라
그런 건 이른바 민중에게나 던져 주어라
그 민중이나 울고불고 아이고 대고 할 일이다
그런 천박한 일 귀찮은 일은 내 알 바 아니야
하기야 슬픔이 본질적인 것이 되지 않을 때
울음이 말단이나 노동자에게만 머물 때
그런 것들이 다만 천박한 것으로만 보일 때
시인아 너야말로 그 민중과 함께
민중의 울음을 우는 천한 곡비이거라 곡비이거라
감옥의 무기수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내 인생을 노래해 주시오
그 말씀 잊어버릴 때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